1. 결정할수록 지치는 의사결정 피로
사람은 하루에 평균 몇 번의 결정을 내릴까. 생각보다 많다. 오늘 입을 옷, 아침 메뉴, 출근길 루트, 일의 우선순위, 점심은 뭘 먹을지, 말은 어떻게 건넬지… 이렇게 작고 반복적인 선택이 하루 종일 쌓인다. 문제는, 결정 자체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점이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는 자기 저서 『의지력: 인간 최고의 힘을 다시 발견하다』(2011)에서 반복되는 선택이 인지 자원을 소모하고, 결국 판단력과 자제력을 약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이 현상을 그는 ‘의사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라는 개념으로 정리하며,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2. 판단력은 점점 흐려진다
2011년, 이스라엘에서 진행된 연구는 이 개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한 논문에 따르면, 교도소 가석방 심사를 맡은 판사들이 오전 중에는 가석방을 허가할 확률이 높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절 비율이 높아졌다. 이는 판사들이 많은 결정을 내린 뒤 점점 더 ‘가장 안전한 판단’을 택하게 되었다는 분석이었다. 즉, 뇌가 피로해진 상태에서는 상황의 본질보다 익숙한 결론을 고르기 쉬워진다.
이런 피로는 소비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슈퍼마켓 계산대 앞, 필요하지 않은 간식을 집어 드는 순간, 온라인 쇼핑몰에서 아무거나 빠르게 결제해버리는 순간, 결정이 반복된 후라면 그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뇌가 지친 상태일 수 있다.
3. 판단이 흐려지는 순간들
의사결정 피로는 단순한 육체적 피로와 다르다. 몸이 멀쩡해도, 판단이 반복되면 뇌는 빠르게 에너지를 잃는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증상은 다음과 같다.
● 결정을 미루거나 회피하게 된다
● 무난하거나 익숙한 선택으로 흐른다
● 충동적인거나 감정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업무 중 ‘중요한 판단은 나중에 하자’고 넘기는 일도 뇌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는 무의식적 반응일 수 있다.
4. 실천적 대응: 선택을 줄이는 기술
의사결정 피로는 피할 수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이 매일 같은 옷을 입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판단의 에너지를 아끼고, 더 중요한 결정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다.
중요한 결정은 오전처럼 상대적으로 집중력이 높은 시간대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 반복되는 선택 ‒ 식단이나 복장처럼 매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들 ‒ 은 아예 사전에 정해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업무 구조 역시 루틴화하거나 자동화함으로써 불필요한 판단을 줄일 수 있고, 하지 않을 것을 미리 정해두는 것도 유용하다. 회피 전략도 하나의 적극적인 결정 방식이 될 수 있다.
핵심은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맞는 '에너지 절약형 결정 루틴'을 만드는 데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판단을 위한 공간과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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