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품 이야기

성수에서 스낵까지, 자판기(vending machine)의 역사

Egaldudu 2025. 8. 4. 19:35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우리가 일상에서 스쳐 지나치는 자판기는 생각보다 오래된 뿌리를 가진다. 시작은 의외로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1세기, 성수를 나누던 자동 장치

고대 그리스의 기술자 알렉산드리아의 헤론(Hero of Alexandria)은 동전을 넣으면 일정량의 물이 흘러나오도록 설계한 장치를 설계하고, 이를 기록에 남겼다. 동전이 접시 위로 떨어지면 레버가 눌려 밸브가 열리고, 동전이 미끄러져 떨어지면 무게추가 레버를 되돌려 물의 흐름이 멈추는 방식이었다.

 

이 장치는 사원에서 성수(holy water)를 남용 없이 정량으로 나누기 위해 쓰였다고 전해진다. 오늘날돈을 넣으면 정량을 받는자동판매의 원형이 이미 이때 구현된 셈이다.

 

19세기, 산업사회가 불러낸 실용화

오랜 공백 끝에 자동판매는 산업혁명기의 영국에서 실용화되었다. 1883년 런던, 퍼시벌 에버릿(Percival Everitt)이 엽서·편지지·봉투를 파는 현대적 동전식 자판기를 선보였고, 이 기계는 곧 철도역과 우체국 등 공공장소로 확산되었다.

 

이어서 1888년 미국 뉴욕에서는 토머스 애덤스(Thomas Adams)가 고가철도(elevated railway) 플랫폼에 껌 자판기를 설치함으로써, 자동판매를 대중의 이동 동선과 연결하는 새로운 형태를 제시했다.

 

20세기, 음료와 전자화의 진전

음료 자판기는 처음에 종이컵에 음료를 따라주는 형식과 병에 담긴 제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1960년대에 캔 자판기가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대중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선택 버튼과 거스름돈 장치 등 전기·전자 부품이 보편화되면서 신뢰성과 편의성이 크게 높아졌다.

 

21세기, 기술과 문화의 융합

오늘날의 자판기는 판매 기계를 넘어 도시 인프라의 일부로 작동한다. 특히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밀도를 보이며, 2023년 말 기준 약 393.95만 대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인구 대비 기계 대수도 세계 최상위권이다.

 

동시에 스마트 자판기(smart vending machine)도 등장했다. 2010년대 초, JR 동일본의 한 자회사는 ‘acure’라는 스마트 자판기를 선보였다. 이 자판기는 화면과 센서를 통해 이용자의 연령과 성별을 추정하고, 그에 맞는 음료를 추천하는 기능을 선보였다. 이런 기능이 모든 기기에 일반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자판기의 데이터화·지능화를 보여주는 이정표였다.

 

또한 일부 지역과 사업자는 재난 대응형 자판기를 운영하고 있다. 평소에는 유상으로 판매되지만, 지진 경보나 대규모 호우 경보 같은 특정 상황에서는 자동으로 개방되어 식음료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마무리하며

자판기의 역사는 기술과 유통, 도시 문화가 만나 변화해 온 과정 그 자체다. 성수를 정량 배분하던 고대의 장치에서, 철도 플랫폼의 껌 자판기를 거쳐 오늘날 스마트·재난 대응 기능을 갖춘 도시 인프라로까지 ᅳ 자판기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형태를 바꾸며 진화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