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Harold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세계 유일, 설탕을 기념하는 조형물
체코 남동부의 작은 도시 다치체(Dačice). 이 조용한 도시 한복판에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설탕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흰색 정육면체 형태로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상 현대 설탕 소비 문화의 시작을 기념하는 상징물이다.
왜 설탕에 기념비까지 존재할까? 이곳은 바로 1843년, 세계 최초의 각설탕(sugar cube)이 발명된 장소다. 당시 유럽의 식문화와 산업, 그리고 일상의 단맛을 바꿔놓은 생활 속의 혁신은 여기서 출발했다.
설탕이 ‘조각’이 되기까지
19세기 유럽에서 설탕은 지금처럼 편리한 형태가 아니었다. 정제당(sugarloaf)이라 불리는 큰 원뿔형 설탕 덩어리를 칼이나 망치로 잘라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크고 단단한 이 설탕은 다루기 불편하고 위험하기까지 했다.
By Reptonix, CC BY 3.0, wikimedia commons
체코 다치체의 설탕 공장에서 일하던 스위스 출신 기술자 야코프 크리스토프 라드(Jakob Christoph Rad)는 어느 날, 설탕 덩어리를 자르다 손을 다친 아내를 보고 그 불편을 해결하고자 마음먹었다. 라드는 작은 틀에 설탕 혼합물을 넣어 압축해 굳히는 방식을 고안했고, 이를 통해 정해진 크기의 작은 큐브 형태 설탕, 곧 각설탕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기술적으로 간단했지만 그 효과는 놀라웠다. 설탕을 다루는 위험성과 불편함을 줄였을 뿐 아니라, 정량 사용을 가능하게 해 유럽의 차 문화, 특히 홍차와 커피 소비 문화에 중요한 변화를 불러왔다.
작은 정육면체가 만든 큰 변화
각설탕은 발명 이후 빠르게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균일한 크기와 모양 덕분에 정제된 맛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차 한 잔에 설탕을 넣는 행위마저도 정돈된 생활양식의 일부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형태와 향을 더한 설탕 제품들이 많으며, 예전처럼 하얀 정육면체 각설탕을 일상에서 자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형태는 한때 ‘정제된 단맛’의 전형으로 널리 퍼졌고, 단순한 단맛을 넘어서 편의성이 결합된 생활 디자인의 전형이기도 했다.
마무리하며: 한 조각의 설계, 일상의 혁신
다치체의 설탕 기념비는 바로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을 기리는 장소다. 이 정육면체 기념비는 그 자체로 기능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갖춘 조형물이며, 19세기 산업화와 일상 감성의 교차점을 증명하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기회가 된다면 각설탕 한 통을 사서 옛날의 감성과 정제된 단맛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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