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즈는 처음부터 특별한 신발이었다. 기능을 크게 자랑하지 않았고, 눈에 띄는 구조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조용했다. 19세기까지 사람들의 신발은 대체로 소리를 냈다. 가죽 밑창은 바닥을 두드렸고, 발걸음은 늘 드러났다.
그 일상을 바꾼 것이 고무였다.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는 고무에 유황을 더해 가열하는 가황(Vulcanization) 기술을 완성했고, 그 덕분에 유연하고 질긴 고무 밑창이 가능해졌다.
1892년, 미국 고무회사는 이 고무 밑창을 활용한 신발을 만들었다. 1916년에는 ‘케즈(Keds)’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했고, 사람들은 이 신발을 스니커즈(sneakers)라 불렀다. 걸어도 발소리가 나지 않아, 살금살금 다닐 수 있다는 뜻이었다. 기능을 이름으로 삼은 신발이었다. 이 이름은 곧 새로운 신발 문화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스니커즈는 단순한 변형이 아니었다. 밑창은 조용했고, 갑피는 통기성 좋은 캔버스였다. 무거운 구조 대신 가볍고 부드러운 착용감을 추구했다. 끈을 조여 발에 맞출 수 있는 구조도 익숙하지 않은 형태였다. 모두 기존 신발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구조였고, 목적을 가진 설계였으며, 기술과 사용성의 접점을 보여준 생활 속 발명이었다.
스니커즈는 특별한 설명 없이도 신을 수 있는 신발이 되었다. 경기장, 학교, 거리, 공연장까지 어디든 함께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늘 검은 터틀넥, 청바지, 회색 스니커즈를 신고 무대에 올랐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은 미국의 아이콘으로 컨버스를 그렸고, 힙합 그룹 런디엠씨(Run-D.M.C.)는 아디다스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노래했다.
기술은 변했고 소재도 달라졌지만, 가볍고 조용하며 일상에 어울리는 감각은 변하지 않았다. 스니커즈는 하나의 디자인이 아니라, 개념이다. 처음엔 발소리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졌고, 지금은 개성과 편안함을 함께 담는 신발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고무 밑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 조용한 구조 덕분에, 사람들은 스니커즈를 자유롭게 신는다. 작은 기술에서 시작된 발명은 그렇게 일상의 걸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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