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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 이미 들인 것에 얽매이는 마음

Egaldudu 2025. 6. 10. 11:47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손해를 감수하기 어려운 인간의 심리

이미 지불한 비용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며 결정을 바꾸지 못한 적이 있는가. 갑자기 몸이 아파서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상황임에도 이미 항공권을 구매했기 때문에 무리해서 떠난다거나, 지루한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 사용하지 않고 공간만 차지하는 쓸모없는 물건을 아깝다는 이유만으로 버리지 못하는 것 이 모두는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의 고전적인 예들이다.

 

얼핏 보면 경제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 오류는 사실 인간 심리 깊숙한 곳에 뿌리박힌 인지 편향이다. 그 뿌리는 오히려 감정과 자존감, 그리고 뇌가 일관성을 얼마나 강하게 요구하는지에서 시작된다.

 

이성의 실패는 감정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매몰비용 오류는 단지 비용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는 실수가 아니다. 그 근저에는 두 가지 심리 구조가 있다. 손실회피인지 부조화. 사람은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충돌할 때 불편함을 피하려 한다. 이러한 경향은 논리적 사고보다 감정적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본능에 가깝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는 스스로 결정한 일을 되돌리는 데 심리적 저항을 만든다. 그 결과, 이미 투자한 자원 시간, , 감정 을 잃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던져 넣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쁜 돈에 좋은 돈을 쏟아붓는' 전형적인 오류다.

 

경제와 기업의 세계도 이 오류에서 자유롭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약 47%의 기업이 명백히 손실이 예견된 프로젝트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추진한다. 또한 약 60%의 투자자들이 수익 가능성이 사라진 자산을 계속 보유한다. 이는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것 같은 기업 세계에서도 과거에 들인 자원에 대한 심리적 집착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조직 차원에서 이 오류는 자원 낭비와 전략 실패, 기회비용 무시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유연하게 방향을 바꾸는 경쟁자에게 뒤처지고, 변화된 시장 조건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원인은 단순하다. '이미 너무 많이 들였기 때문에'라는 이유 하나다.

 

일상의 선택들이 보여주는 구조화된 착각

이 오류는 경제적 결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일상 전반에서 훨씬 자주 등장한다불필요한 물건을 처분하지 못하는 경우, 오래된 관계를 끝내지 못하는 경우, 효과 없는 치료를 계속 받는 경우  모두가 되돌릴 수 없는 투자에 얽매여 합리적인 선택을 미루는 방식이다.

 

감정적 유대, 자존감, 타인에게 한 약속까지도 매몰비용처럼 작용한다. , 사람은결정 그 자체보다결정에 들인 나의 일부를 더 쉽게 끌어안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자유를 잃는다.

 

해결은 논리가 아니라 구조에 있다

매몰비용 오류는 인지적 구조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단순한 결심만으로는 벗어나기 어렵다. 이 오류를 벗어나려면 결정을 되돌리는 것에 감정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구조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업은 스크럼(scrum) 같은 애자일(agile) 방식을 도입하여 짧은 주기로 판단을 재검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는이미 투자한 것이 아니라앞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기준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이를 위해 의식적으로 느린 사고(slow thinking)를 제안한다. 반사적이고 직관적인 판단에서 한 걸음 물러나 구조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야말로 매몰비용 오류를 벗어나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매몰비용 오류는 우리가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사실은 이미 잃은 것임을 깨닫지 못할 때 생긴다. 이 오류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단지 더 나은 결정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갖는다는 뜻이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돌이킬 수 없는 것을 붙잡는 대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그것이 개인에게는 회복이고, 조직에게는 혁신이며, 인간에게는 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