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빚으로 키운 자산 버블의 끝
경기 호황기에는 빚을 내 자산을 사는 ‘레버리지 투자’가 흔한 전략이다. 자기 돈 1에 빌린 돈 9를 얹어 10의 자산을 사면 자산 가치가 오를 때 수익은 배가된다. 문제는 이 구조가 자산가격이 하락할 때 취약하다는 점이다.
가치가 조금만 떨어져도 손실은 자기 자본부터 깎인다. 이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다. 부채 비율을 줄이기 위해 자산을 팔고 현금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일어난다.
2. 매도는 매도를 부른다
디레버리징의 문제는 그 자체가 자산 가격을 더 끌어내린다는 데 있다. 금융기관이 자산을 급히 매도하면 가격은 하락하고, 그 하락이 다시 추가 매도를 유발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른바 ‘파이어 세일(fire sale)’ 현상이다.
자산 가격이 떨어질수록 회계상 손실이 커지고, 손실을 막기 위한 매도가 다시 가격을 낮춘다. 어느새 시장 전반이 패닉에 빠지고, 수많은 기업과 가계가 이 연쇄반응에 휘말리게 된다.
3. 2008년, 디레버리징의 전형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디레버리징이 경제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은행들은 주택담보부증권(MBS)으로 가득 찬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시장이 흔들리자 이들을 급히 처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증권들은 유동성도 낮고, 평가도 어렵기 때문에 가격이 순식간에 폭락했다. 동시에 헤지펀드들은 고객의 환매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주식을 팔 수밖에 없었고, 이는 주가를 추가로 끌어내렸다.
4. 정부만 남는다
이런 대규모 디레버리징이 시작되면, 민간부문은 자산을 팔아 부채를 줄이기에 급급해진다. 그 결과 시장에서 자산을 ‘사는 쪽’은 사라지고 경제시스템 전체가 위축된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는 ‘건전한 재무제표’는 정부뿐이다.
중앙은행이나 재무부가 나서서 자산을 매입하거나,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으면 시스템은 붕괴한다. 2008년 당시 미 연준과 재무부의 개입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5. 빚은 위험의 증폭기
디레버리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빚은 잘 나갈 때에는 수익을 극대화하지만, 경제가 흔들릴 때는 손실을 증폭시키는 위험 요소가 된다. 특히 매도하지 않으면 손실이 실현되지 않는 자산도 빚이 있으면 강제로 팔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따라서 금융 안정성을 고려한다면, 부채는 자신의 소득과 유동성을 기준으로 충분히 감내 가능한 수준에서만 유지되어야 한다. 위기의 순간에는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가'보다, '그 빚을 얼마나 빠르게 상환해야 하고 실제로 상환할 수 있는가'가 생존을 가른다.
'이런저런 용어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대적 M&A, 그 전술과 방어전략 (4) | 2025.06.13 |
---|---|
‘대세’를 따르는 심리, 밴드왜건 효과와 그 위험성 (6) | 2025.06.13 |
페이스 테크(Face Tech), 얼굴로 열리는 새로운 세계 (2) | 2025.06.13 |
시맨틱 웹(semantic web)이 열어가는 미래: 의미를 이해하는 웹의 혁신 (7) | 2025.06.12 |
유동성의 본질과 ‘유동성 함정’의 이해 (4) | 2025.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