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하는 자와 지키는 자의 치밀한 두뇌 싸움
1. 적대적 M&A란 무엇인가?
기업 인수합병(M&A)은 일반적으로 두 회사 간의 합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모든 인수가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상대 기업의 동의 없이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 진행되는 인수 시도를 ‘적대적 M&A’라고 한다. 이런 경우 가장 흔히 사용되는 전략이 ‘공개매수(tender offer)’다.
이는 인수 대상 기업의 주식을 시장 가격보다 높은 금액에 사들이겠다는 의사를 공표해, 최대한 많은 지분을 빠르게 확보하는 방식이다. 특히 공개매수가 발표되면 주가가 급등하고, 단기간에 시장이 요동치게 된다. 이러한 기습적인 인수방식은 기업에게 큰 위협이 되며, 기업의 대응전략이 부족할 경우 단기간에 경영권을 상실할 수 있다.
2. ‘토요일 밤의 기습’과 기업사냥꾼
미국에서는 인수 기업이 대상 기업의 대응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토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에 공개 매수를 발표하는 일이 많다. 이를 일명 ‘토요일 밤의 기습(saturday night special)’이라고 부른다. 이 전략은 대상 기업의 방어적 대응을 차단하기 위한 전형적인 기습 전술이다.
또한, 실제로 기업인수가 목적이 아닌 경우도 있다. 예컨대 일부 투기세력은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한 뒤, 경영권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지분을 되파는 전략을 쓴다. 이를 ‘그린메일(greenmail)’이라 하며, 여기서 ‘그린(green)’은 달러 지폐의 색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협박 수단을 쓰는 경우는 ‘블랙메일(blackmail)’이라 부른다. 이처럼 적대적 M&A에는 단순한 투자 이상의 복잡한 정치와 심리가 얽혀 있다.
3. 주주총회에서의 전쟁, 위임장 대결
주식 매입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인수자는 또 다른 전략을 택한다. 그것이 바로 ‘위임장 대결(proxy fight)’이다. 이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확보해 현 경영진을 해임하고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를 등기임원으로 앉히는 방식이다. 이때 주주들의 위임장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일반적으로 상장기업에서 50% 이상의 지분을 단숨에 확보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소액주주와의 관계 관리가 핵심이 된다. 평소 주주들과 신뢰를 쌓아온 기업은 비교적 적은 지분만으로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지만, 주주 관리를 소홀히 해온 기업은 위임장 확보전에서 불리해진다. 결국 경영권 분쟁은 기업의 재무상태뿐 아니라, 평소의 신뢰 자본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4. 인수 시도를 무력화하는 방어 전략들
적대적 인수 시도에 맞서기 위해 기업들은 다양한 방어 전략을 구사한다. 가장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가 ‘포이즌 필(poison pill)’이다. 이는 기존 주주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신주를 발행하거나, 기존 주식을 할인된 가격에 추가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인수기업의 지분율을 희석시키는 방식이다. 인수자에게 막대한 비용 부담을 안겨 포기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또 다른 전략으로는 ‘황금 낙하산(golden parachute)’이 있다. 이는 인수 시 임원들에게 고액의 퇴직금, 스톡옵션, 보너스를 지급하게 만드는 장치로, 인수 비용을 의도적으로 높여 인수 매력을 떨어뜨린다. 일반 직원에게도 비슷한 방식의 퇴직 보장을 제공하는 ‘주석 낙하산(tin parachute)’ 전략은 보다 넓은 범위의 비용 상승을 유도한다. 모든 전략은 한 가지 목적, ‘인수의 경제적 효용을 없애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전략은 '팩맨 디펜스(pac-man defense)'다. 이는 인수당할 위기에 놓인 회사가 오히려 공격적으로 인수 기업의 지분을 사들이며 반격하는 방식으로, 상호공격의 형국이 된다. 이때 상법상 상장사가 타 회사의 주식을 10% 이상 보유할 경우 의결권에 제한이 걸리는 조항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공격자가 되었던 인수 회사가 방어 대상이 된 회사로부터 되려 M&A 당할 위기에 놓이기도 하는, 역동적인 전술이다.
5. 또 다른 대안, 백기사와 포이즌 풋
적대적 M&A를 막기 위한 또 다른 효과적 방법은 제3의 우호 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른바 ‘백기사(white knight)’ 전략이다. 이는 경영권을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우호적인 제3자에게 회사를 매각하거나 지분을 넘김으로써 공격을 방어하는 방식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다른 방어수단이 어려울 경우 대안으로 등장한다. 백기사는 경영진과 공조해 회사를 방어하고, 때로는 일시적으로 경영에 개입하기도 한다.
한편 2010년 6월, 하이닉스반도체는 국내 최초로 ‘포이즌 풋(poison put)’을 도입했다. 이는 특정 조건(예: 인수 발생 시)에 따라 기존 채권을 조기상환해야 한다는 조항을 붙이는 방식이다. 이로써 인수자가 회사를 넘겨받자마자 막대한 부채 상환 부담을 안게 되어, 인수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 이처럼 적대적 M&A에 대한 대응은 단순한 법률적 방어를 넘어, 금융·경영·심리까지 총동원된 전략적 종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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