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6월에 하는 겨울 생각 - - -
내가 눈을 사랑하는 까닭은 눈이 조용히 내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쟁을 싫어하는 까닭은 전쟁이 소란스럽기 때문입니다.
(김세경)
낯선 고요 속의 풍경
눈 오는 날, 거리의 소음은 마치 꺼진 듯 잦아든다. 익숙했던 자동차의 굉음도, 사람들의 발걸음도, 갑자기 모두 사라진 듯 느껴진다. 많은 이들이 이 정적에 대해, ‘눈이 온 세상을 덮었다’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시적 표현만은 아니다. 눈은 실제로 세상의 소리를 지우는 자연의 장치다.
눈송이 사이의 공기층
눈송이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정교한 결정들은 서로 부딪히며 수많은 공기 주머니를 만든다. 이 공기층은 우리가 흡음재로 사용하는 방음 패널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소리의 파동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며, 반사를 막는다. 마치 세상이 이불을 덮은 것처럼 바깥세상의 소리가 둔탁하게 깔린다
부드러움이 만드는 정적
눈은 그 자체의 상태에 따라 소리에 대한 반응도 달라진다. 신선하게 내린 눈, 특히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눈일수록 소리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흡수한다. 이는 눈 표면이 불규칙하고 다공성일수록 소리의 반향을 흩트려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눈 위를 걷는 발소리가 부드럽게 ‘슥슥’ 감기는 듯한 소리로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딱딱한 땅을 걸을 때 나는 ‘터벅터벅’ 소리는 흡수되고, 남은 건 우리와 눈 사이의 아주 미세한 마찰음뿐이다.
차가운 공기, 느린 소리
눈 오는 날이 조용한 데에는 또 다른 과학적 이유가 있다. 기온이 낮을수록 소리의 전파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차가운 공기는 밀도가 높아 음파가 더 느리게 이동하고, 이로 인해 주변 소리의 전달력도 약해진다. 눈과 차가운 공기, 이 두 가지가 만나면 마치 세상 전체가 무음 모드로 전환된 듯한 느낌이 된다.
정적은 사라지고
하지만 이 정적은 오래가지 않는다. 눈이 눌리거나 얼어 딱딱해지면, 공기층은 사라지고 표면은 단단해진다. 더 이상 소리를 흡수하지 못한 눈은 오히려 소리를 반사하는 표면으로 바뀐다. 그래서 내린 지 하루 이틀 지난 눈 위에서는 다시 소음이 되살아나고, 도시의 일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되돌아온다.
눈이 주는 일시적인 평온
눈은 단지 풍경을 덮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세상을 조용하게 만들고, 우리가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하던 침묵의 층을 경험하게 해준다. 눈이 내리는 동안 세상은 고요해진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우리 역시 잠시 멈춰 선다.
'사소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덜란드(Netherlands)와 홀란드(Holland), 같은 나라가 아니다 (3) | 2025.06.23 |
---|---|
파상풍, 과연 녹 때문일까? (2) | 2025.06.20 |
소리로 유리잔을 깨뜨릴 수 있을까? (5) | 2025.06.18 |
낙수효과와 분수효과: 성장 철학의 충돌 (3) | 2025.06.17 |
왜 정지표지판(Stop Sign)은 팔각형일까? (3) | 2025.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