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성벽의 전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여호수아 6장 20절)
고대 이스라엘의 여리고 성벽 이야기에서, 소리가 거대한 성벽을 무너뜨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정말 소리의 힘이 물리적인 구조물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이 흥미로운 질문은 단순한 신화를 넘어, 현대 과학에서 연구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소리로 유리잔을 깨뜨리는 공명 현상이다.
소리와 공명의 원리
소리는 공기를 매질로 삼아 전달되는 에너지의 일종이다. 이 에너지는 파동의 형태로 퍼지며, 파동이 물체에 닿으면 그 안에 있는 입자들 역시 진동하게 된다. 이때 소리의 진동수가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면 진동이 점점 증폭되는데, 이를 공명이라 부른다. 마치 그네를 일정한 리듬으로 밀어주면 점점 높이 올라가듯, 물체도 반복되는 자극에 의해 점차 크게 흔들리게 된다.
유리잔이 깨지는 이유
유리잔은 공명현상이 잘 일어나는 대표적인 물체다. 빈 유리잔은 내부에 방해물이 없어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되며, 유리라는 재질도 탄성이 있으면서 단단해 공명에 적합하다.
유리잔의 공명 주파수는 보통 500에서 600헤르츠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주파수의 소리가 지속되면 유리잔은 점점 더 크게 진동하다가 결국 그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며 산산이 부서진다. 특히 유리잔에 미세한 금이라도 있으면 쉽게 파손된다.
어느 정도의 소리가 필요한가
단순히 주파수를 맞추는 것만으로는 유리잔이 깨지지 않는다. 소리의 강도 또한 중요한 요소이며, 일반적으로는 100~110데시벨에 달하는 강한 음압이 필요하다. 이 정도의 소리는 자동차 경적이나 고출력 락 콘서트보다 훨씬 큰 수준이며, 장시간 노출되면 청력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위험한 소리다.
이런 조건을 고려하면, 온라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소리로 유리잔을 깼다”는 영상들에는 다소 의문이 생긴다.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증폭 장비 없이 이처럼 강한 소리를 오직 목소리만으로 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현실성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
공명의 다양한 모습
By Nopira(추정),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공명은 유리잔을 넘어 다양한 현상에서도 나타난다. 다리나 건축물에서 반복적인 진동이 구조물을 파괴하는 사례도 있으며, 1940년에 발생한 유명한 타코마 다리(Tacoma Narrows Bridge) 붕괴 역시 공명으로 인한 재난이었다. 유튜브에서 보기.
또한 라디오나 텔레비전, 음악 악기, 심지어 천체의 운동까지 공명의 원리가 적용된다. 이처럼 공명은 우리 주변에서 때로는 아름답고 유용하게, 때로는 위험하게 작용하고 있다.
◎ 본문에서는 관례대로 타코마 다리의 붕괴를 공명 현상의 대표 사례로 소개했지만, 현대 공학에서는 이를 단순한 공명이 아니라, 바람과 구조물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한 플러터 현상으로 보는 해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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