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분홍빛 플라밍고들이 물속에 한쪽 다리로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얼핏 보면 우스꽝스럽고 다소 기이한 광경이다. 하지만 이 행동은 단순한 습관이나 균형 놀이가 아니다. 사실, 플라밍고를 비롯한 일부 조류가 한쪽 다리로 서는 이유는 생존과 직결된다.
얇고, 길고, 취약한 다리
플라밍고의 다리는 비정상적으로 길고 가늘다. 멀리서 보면 다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화려한 깃털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 가는 다리는 습지와 얕은 물속을 헤치는 데는 유리하지만, 차가운 바람과 물 앞에서는 상당히 취약하다.
조류의 체온은 일반적으로 약 40도 내외로, 외부 온도에 비해 매우 높다. 특히 플라밍고의 얇은 다리는 외부에 직접 노출돼 있어, 차가운 공기나 물에 닿으면 빠르게 체온을 빼앗긴다. 이는 에너지 소모로 직결된다.
체온 유지, 즉 에너지 절약
플라밍고가 한쪽 다리를 몸 속 깃털 속으로 숨기는 이유는 바로 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두 다리를 모두 밖에 내놓으면 지속적으로 열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한쪽 다리만 사용하면, 그동안 다른 하나는 몸 속 따뜻한 깃털 아래에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이 행동은 특히 휴식 시간이나 수면 중에 두드러진다. 깨어 있을 때는 주로 이동과 먹이 활동에 집중하지만, 정지 상태에서는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더 우선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유사한 행동이 다른 조류에서도 관찰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황새가 그렇다. 황새는 종종 지붕 위나 높은 장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이때도 플라밍고처럼 한쪽 다리를 접고 선다. 이는 야생에서 체온 유지가 곧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전략임을 보여준다.
사냥과는 관련 없다
한편, 일부에서는 플라밍고가 한쪽 다리로 서면 물속 진동이나 소음을 줄여 사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류 생태학 연구에 따르면, 이 행동은 먹이 사냥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플라밍고의 주요 먹이는 작은 갑각류나 플랑크톤으로, 이들은 플라밍고의 작은 움직임에 크게 영향 받지 않는다.
결국, 플라밍고의 한쪽 다리 서기는 철저히 '체온 유지'와 '에너지 절약'을 위한 생리학적 전략이다. 즉, 불필요한 열 손실을 줄여 물이나 바람으로 인한 체온 저하를 최소화하도록 진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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