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
테이퍼, 또는 타피르라고도 불리는 이 동물은 처음 보면 상당히 혼란스럽다. 돼지를 닮은 둥근 몸, 끝부분이 길게 돌출된 짧은 주둥이, 말 같은 튼튼한 다리까지. 마치 여러 동물의 특징을 섞어 놓은 듯하다. 실제로 태국에서는 테이퍼를 ‘프솜셋(P’som-set)’, 즉 ‘혼합물’이라 부른다. 남은 조각으로 만들어졌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테이퍼는 한국에서도 드물게 ‘맥(貘)’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중국과 일본에 전해 내려오는, 나쁜 꿈을 없애준다는 ‘꿈을 먹는 동물’ 전설에서 유래했다. 다만, 이 이름은 한국에서는 널리 쓰이지 않는다.
2,000만 년의 흔적
테이퍼의 기원은 2,0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테이퍼는 남극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륙에 널리 퍼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현재는 모두 4종으로, 중남미에 세 종, 동남아시아에 한 종만 살아남았다.
생물학적으로 테이퍼는 말과 코뿔소의 근연종에 속한다. 분류학적으로 보면 포유류(Mammalia), 기제목류(Perissodactyla, 홀수발굽목), 테이퍼과(Tapiridae)에 해당한다.
테이퍼의 습성과 번식
테이퍼는 대부분 단독으로 움직이며, 주로 야행성이다. 숲속을 돌아다니며 떨어진 열매와 어린 잎, 풀, 양치식물을 찾아 먹는다. 콧구멍이 난 짧고 유연한 주둥이는 단순히 냄새를 맡는 데 그치지 않으며, 멀리 있는 먹이를 포착하는 데에도 쓰인다.
테이퍼는 물가에서도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강이나 연못에 들어가 바닥을 걷거나 수영을 하며, 이는 체온을 낮추고 몸에 붙은 기생충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때 주둥이 끝을 물 밖으로 내밀어 숨을 쉰다.
번식 주기는 종마다 다르지만 임신 기간은 약 13개월로 길다. 한 번에 한 마리 새끼를 낳으며, 새로 태어난 테이퍼는 온몸에 뚜렷한 줄무늬와 반점을 지닌다. 이 무늬는 성장기 동안 뛰어난 위장 효과를 제공하고, 생후 6개월에서 8개월 사이에 완전히 사라진다.
위협에 처한 생존자
오랜 세월을 버텼지만, 테이퍼는 지금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숲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의 포획도 끊이지 않는다. 테이퍼의 고기는 종종 ‘버팔로 고기’로 둔갑해 팔리고 있으며, 두꺼운 가죽은 오랫동안 귀하게 여겨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테이퍼의 신체 일부가 여전히 민간요법에 쓰인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기준으로, 현재 살아남은 테이퍼 4종 모두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남아 있는 네 종의 미래
현재 남아 있는 네 종의 테이퍼는 모두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고대부터 모습을 크게 바꾸지 않고 살아남은 이 독특한 동물은 이제 인간의 보존 노력에 생존을 의지하고 있다. 테이퍼를 지키는 일은 단순히 동물을 보전하는 차원을 넘어, 숲과 그 속의 생태계를 함께 보호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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