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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의 표적, 수박풀 꽃잎의 선명한 중앙 무늬

Egaldudu 2025. 10. 7. 15:56

히비스커스 트리오눔(Hibiscus trionum, 수박풀)

꽃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다. 각 꽃잎에는 눈에 보이는 무늬와 색의 대비, 그리고 인간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자외선 패턴까지 복잡한 ‘언어’가 숨겨져 있다. 그중에서도 중앙부에 짙은 색의 원형 무늬를 지닌 수박풀은 이 언어의 정수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중심 무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진이 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수박풀(Hibiscus trionum) 꽃잎 중앙의 어두운 무늬는 단순한 색소의 농도 변화가 아니라 발달 단계에서 미리 프로그램된 패턴이다. 연구진은 현미경 관찰과 색소 분포 분석을 통해, 꽃잎의 초기 성장 단계에서 이미 안토시아닌 축적이 특정 영역에 국한되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이 무늬는 색소의후천적 침착이 아닌, 유전적으로 지정된 위치에서의 조기 발현이며, 꽃잎이 자라면서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는 식물의 발달 프로그램 속에 일종의 디자인 도면 같응 것이 내장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패턴이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생육 환경(온도, 광량, 영양 조건)을 조절한 실험에서 꽃이 중앙 무늬의 경계와 크기를 능동적으로 조정함을 관찰했다. 이러한 조정은 수분 곤충이 보다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신호를 최적화하는 적응적 반응(adaptive response)으로 해석된다.

 

곤충의 시선을 끄는표적

 

연구진은 다양한 크기의 중앙 무늬를 가진 수박풀 꽃을 준비해 꿀벌의 행동을 관찰했다. 실험은 동일한 광 조건하에서, 각 꽃의 중앙부에 형성된 무늬 면적을 표준화한 후, 벌이 한 송이를 탐지하고 착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속 카메라로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결과는 명확했다. 중앙 무늬가 클수록 벌의 인식 속도가 빠르고, 방문 빈도 또한 유의미하게 높았다. 무늬가 큰 꽃에서는 벌이 같은 시간 동안 4송이를 방문했지만, 작은 무늬를 가진 꽃에서는 3송이에 그쳤다. 이는 단순한 선호의 차원이 아니라, 시각적 신호의 크기가 행동 효율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곤충의 시각 시스템이 대비(contrast)와 패턴 크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기존 인지생태학(cognitive ecology)의 이론과도 일치한다.

 

꽃과 곤충, 상호 진화의 흔적

이처럼 꽃잎의 무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수분을 유도하기 위한 시각적 정보 신호다. 벌은 이 신호를 통해 더 빠르게 꿀에 접근하고, 꽃은 더 많은 방문을 통해 번식 성공률을 높인다. 이 관계는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상호 진화(coevolution)의 결과이며, 식물은 곤충의 감각 체계에 맞춰 시각적 전략을 정교하게 조정해왔다.

 

보이지 않는 대화

꽃잎의 문양은 인간에게는 미학적 장식처럼 보이지만, 꽃에게는 이곳에 꿀이 있다’, ‘이리로 와서 앉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표지판이다. 이 경우, 곤충은 그 언어를 이해하고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노련한 판독가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생존을 위해 정밀하게 계산된 의사소통 체계가 숨어 있다.


참고:

Tamborini, M.D. et al., “Hibiscus bullseyes reveal mechanisms controlling petal pattern proportions that influence plant–pollinator interactions”, Science Advances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