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품 이야기

진자시계(Pendulum clock)의 발명

Egaldudu 2025. 3. 30. 13:14

 

 

 

 

서론: 시간을 붙잡은 기계, 진자 시계

 

누군가시간을 발명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간을만들고’, ‘측정하고’, ‘표준화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그 과정의 정점 중 하나가 바로 진자시계의 발명이다. 이것은 단지 정밀한 도구의 탄생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리듬을 기술로 재현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1. 해와 물로 시간을 재던 시대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해의 움직임이나 물의 흐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가늠해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의 그림자를 이용한 해시계가, 바빌론(현 이라크)에서는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이용한 물시계가 사용됐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들은 날씨에 취약했고 정밀도도 낮았다.


1300
년대 유럽에서는 낙하하는 추의 힘으로 움직이는 기계식 시계가 등장했지만 시간의 정확성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1500년대, 귀족들은 손목 대신 주머니에 넣는 회중시계(pocket watch)를 휴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오차가 크고 일정하지 않았다.

 

2. 갈릴레오와 하위헌스, 진자를 보다

17세기 초,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교회 천장의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챘다. 진자가한 번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 진폭이 작아져도 일정하다는 것. 이 원리는 훗날등시성(isocronism)’이라는 물리학 개념으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이를 실제 시계 기술로 구현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수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였다. 1656, 하위헌스는 진자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시계 장치에 적용한 최초의 진자시계를 만들었다.


그 정확도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하루 오차가 수 분에 달하던 기존 시계들과 달리, 진자시계는 초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는 정밀성을 갖추었다. 그래서 하위헌스는 시계에 시침과 분침뿐 아니라 초침까지 장착할 수 있었다.

 

3. 진자의 운동, 시간을 흔들다

진자시계의 핵심은 단순하면서도 우아하다. 길이가 일정한 진자는 중력과 복원력에 의해 항상 같은 주기로 흔들린다. 진자의 주기는 길이에 따라 정해지고, 흔들리는 폭이 작을수록 운동이 거의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므로 시간을 정확하게 쪼개는 데 유리했다.

탈진기, By Chetvorno, CC0, https://commons.wikimedia.org

 

이때탈진기(escapement)’라는 장치는 진자의 흔들림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포착해 시계 바늘을 조금씩 움직이고, 동시에 진자에 에너지를 다시 공급해 흔들림을 유지시킨다. , 진자는 흔들리고 시계는 그 흔들림을시간으로 바꿔낸다. 이 구조 덕분에 기계가 시간의 흐름을 일정하게생산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기술 진보를 넘어, 과학과 산업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4. 바다 위에서는 무용지물

하지만 진자시계는 육지에서만 정확했다. 파도에 따라 배가 끊임없이 흔들리는 바다에서는 진자의 운동이 왜곡돼 정밀한 측정이 불가능했다. 이것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항해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제였다.

 

항해 중 경도를 정확히 계산하려면 출발 지점의 시간과 현재 위치의 태양 고도를 비교해야 한다. 시계가 없으면 수천 킬로미터를 벗어나는 항로 오차가 발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18세기, 영국 정부는진자 없이도 바다 위에서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든 자에게 거액의 상금을 수여하겠다고 공표했다.

 

이 도전에 응한 이는 과학자도 귀족도 아니었다. 영국의 시계공 겸 목수 존 해리슨(John Harrison)이었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마린 크로노미터를 개발했고, 1762넘버 4 해양 시계(Marine Chronometer No. 4)’로 마침내 정부의 인정을 받았다. 이 시계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정확한 시간을 유지할 수 있어서 항해, 탐험, 무역의 안전성과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했다.

 

5. 시계가 만든 새로운 세계

진자시계는 이후 3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로 자리잡았다. 정확한 시계가 가능해지자 과학실험은 정밀도를 높였고, 열차 운행 시간표, 공장의 교대제, 국가 단위의 시간 동기화 같은 사회시스템이 등장했다. 시간은 더 이상 자연의 흐름이 아니라 표준화되고 공유되는 질서가 되었다.

 

1840년에는 스코틀랜드의 발명가 알렉산더 베인(Alexander Bain)이 최초의 전기 시계를 발명하면서 동력원조차 기계에서 전기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원자시계, GPS, 인터넷 동기화 시스템까지 우리는 여전히 정확한 시간의 계보 속에 살아가고 있다.

 

6. 지금도 우리는 진자 위에 서 있다

진자시계는 멈췄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시계 속에는 여전히 정확한 시간이라는 이상(ideal)이 숨 쉬고 있다. 갈릴레오가흔들림을 통해 시간의 규칙성을 직감했고, 하위헌스가 그것을 시계로 구현했으며, 해리슨이 바다 위에서도 그 정밀성을 실현한 노력들은 단순한 기계 발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의 반복을 이해하고, 측정하고, 삶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지적 도전이었다.


우리가 떠올리는 진자시계의 이미지는 대개 벽걸이형 괘종시계다. 하지만 천문대나 특수한 연구 분야에서 사용되는 진자시계는 이와 다른 구조와 형태로 제작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