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농부와 식당 주인 사이의 다툼에서
마트 진열대에서 달걀 한 판을 집어 들 때 우리는 그 포장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종이든 플라스틱이든 그 구조는 너무 당연해서, 누군가가 고민하고 만든 결과라는 사실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단순한 구조물도 발명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꽤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
1911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한 마을에서 신문 편집자였던 조셉 코일(Joseph Coyle)은 달걀을 배송한 농부와 식당 주인이 갈등을 빚는 상황을 목격한다. 운반 중에 달걀이 깨져서 그 피해를 두고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앤더슨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고, 달걀 하나하나가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게 담길 수 있도록 셀 구조의 포장판을 고안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달걀판(egg carton)의 기원이다.
2. 구조는 단순하지만, 설계는 치밀했다
달걀판은 기본적으로 곡면이 반복된 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달걀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칸을 나누고, 충격이 닿아도 쉽게 깨지지 않도록 무게를 분산시킨다. 재질은 가볍고 생산 비용은 낮으며, 운반과 보관에도 효율적이다.
그 결과 이 구조는 100년이 넘도록 거의 바뀌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기능과 실용성 면에서 처음부터 충분히 완성된 설계였던 셈이다.
3. 방음을 기대할 순 없지만, 시도는 가능하다
달걀판은 본의 아니게 간혹 값싼 방음재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벽에 붙이면 소리를 좀 덜 튕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 무엇보다도 큰 돈이 들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돈이 부족한 작업 환경,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되는 상황, 전문 자재를 쓸 수 없는 조건에서는 달걀판이라도 한번 붙여보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달걀판의 굴곡진 표면은 소리를 조금 흩뜨리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흡음 효과는 미미하고, 방음 기능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값이 싸고 구하기 쉬우며, 그 정도라도 해볼 수 있기 때문에 달걀판은 때때로 벽에 붙는다. 그 이상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낫다.
4. 발명이란 꼭 대단할 필요는 없다
달걀판은 크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으며 기술적으로도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목적을 가진 구조이고, 누군가의 관찰과 해법에서 시작된 물건이다. 단순함 속에 기능이, 그리고 그 기능 속에 생각이 녹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달걀판은 이미 하나의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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