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의 탁란 전략
목차
1. 부모 노릇을 하지 않는 새
2. 탁란, 남의 둥지를 이용하는 생존 전략
3. 왜 같은 둥지를 찾아야 하는가
4. 치밀하게 계산된 산란 과정
5. 첫째가 되어야 살아남는다
6. 기생처럼 보이지만, 정교한 진화의 결과
1. 부모 노릇을 하지 않는 새
새들은 대개 번식기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고, 품고, 부화한 새끼에게 먹이를 공급한다. 조류의 세계에서 부모새의 육아는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행위다. 그러나 이 규칙을 따르지 않는 예외적인 새도 있다. 바로 뻐꾸기다.
뻐꾸기는 둥지를 만들지 않는다. 직접 알을 품지도 않고, 부화한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도 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몰래 낳고는 자리를 떠난다. 그 둥지의 주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 뻐꾸기의 알을 자기 자식인 줄 알고 품고 기르게 된다.
2. 탁란, 남의 둥지를 이용하는 생존 전략
이러한 번식전략을 생물학에서는 탁란(托卵, brood parasitism)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알을 다른 종의 둥지에 맡기는 방식으로 잘 알려진 유럽뻐꾸기(Cuculus canorus)는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며, 이 전략을 정교하게 진화시킨 대표적인 종이다.
탁란은 육아의 부담을 줄이는 대신 매우 높은 정밀도를 요구하는 전략이다. 유럽뻐꾸기는 보통 번식기 동안 15~20개의 알을 낳는데(Davies 2000), 이 알들은 각기 다른 둥지에 하나씩만 낳아야 한다. 그만큼 많은 둥지를 조사하고, 숙주의 행동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3. 왜 같은 둥지를 찾아야 하는가
뻐꾸기가 아무 둥지에나 무작정 알을 낳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알이 숙주의 알과 얼마나 비슷하냐 하는 것이다. 숙주의 시각은 민감해서, 낯선 알 하나만으로도 둥지를 포기하거나, 이상한 알만 골라내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암컷 뻐꾸기의 알 색과 무늬는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따라서 자신이 어릴 적 자라난 숙주 종과 유사한 종을 다시 탁란 대상으로 선택해야 한다. 이를 종 특이성(host specificity)이라고 한다. 예컨대 호랑지빠귀에게 길러진 암컷 뻐꾸기는 자라서도 같은 종의 둥지를 찾는다.
4. 치밀하게 계산된 산란 과정
수컷(위)이 참매를 닮은 외형으로 숙주를 혼란시켜 암컷(아래)이 몰래 알을 낳을 기회를 만든다.
탁란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뻐꾸기는 숙주가 막 알을 낳기 시작할 때를 노린다. 너무 일찍 낳으면 숙주가 이상하다고 느껴 알을 버릴 수 있고, 너무 늦으면 뻐꾸기 알이 나중에 부화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산란은 빠르게 이루어진다. 뻐꾸기는 둥지에 도착하면 보통 10초 이내에 알을 낳고 떠난다. 때로는 숙주의 알 하나를 몰래 물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의 알을 놓기도 한다. 수컷 뻐꾸기는 근처에서 숙주의 주의를 끄는 역할을 하며, 이 역시 전략적으로 작용한다.
5. 첫째가 되어야 살아남는다
뻐꾸기 새끼는 부화하자마자 둥지 안의 다른 알이나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이 행동은 학습된 공격이 아니라 피부에 닿는 감각 자극에 대한 반사 행동이다. 다른 알이나 새끼가 등에 닿으면 자동적으로 등을 이용해 밀어내는 것이다.
이로 인해 둥지에는 뻐꾸기 한 마리만 남는다. 숙주는 그것이 자기 새끼인 줄 알고, 아무 의심 없이 먹이를 물어다 준다. 대부분의 경우, 뻐꾸기 새끼는 부화 후 며칠 만에 숙주새보다 몸집이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수백 번의 먹이를 요구하며 실제로 그만큼을 받아낸다.
6. 기생처럼 보이지만, 정교한 진화의 결과
겉보기에는 단순한 얌체 전략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뻐꾸기의 탁란은 숙주의 시각 인식능력, 번식시기, 행동반응까지 정밀하게 겨냥해 진화한 결과다.
알의 외형은 종마다 다르게 진화했고, 둥지를 고르는 방식도 유전자와 경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새끼의 반사행동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생존 도구다. 이 모든 요소는 수천 세대에 걸친 진화의 결과이며, 뻐꾸기는 그렇게 남의 둥지에서 자라며 생존해 왔다.
Davies, N. B. (2000). Cuckoos, Cowbirds and Other Cheats. London: T & A D Poy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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