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하얀 가루처럼 보이는 병
봄이나 초여름, 길가나 공원 나무 잎에 하얀 가루가 내려앉은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치 밀가루를 뿌린 듯한 그 풍경은 얼핏 보면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식물의 건강을 위협하는 곰팡이병이다.
식물학에서는 이를 ‘흰가루병’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순해 보이지만 이 곰팡이는 식물 표면에 가느다란 균사를 뻗고 포자를 날리며 확산되는 전형적인 기생생물이다.
2. 밀가루처럼 뿌려진 곰팡이
흰가루병은 식물의 잎과 줄기 표면을 얇고 하얗게 덮으며 자란다. 영어로는 ‘가루 곰팡이(Powdery mildew)’라고 부르며, 겉보기에는 마치 밀가루나 먼지를 뿌린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 하얀 가루는 곰팡이의 균사와 포자가 뒤엉킨 덩어리로, 식물을 가볍게 흔들기만 해도 공중에 솜처럼 날리며 퍼져나간다. 특히 어린 잎, 새순, 열매 표면에 빠르게 번식해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수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3. 숙주가 정해진 기생균
이 곰팡이는 아무 식물에서나 다 자라는 것은 아니다. ‘숙주 특이성’을 가진 이 균은 특정 식물을 선택해 침투한다. 잎의 표면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구조를 이용해 식물 세포 안으로 직접 침입해 영양분을 흡수한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식물의 성장은 크게 저해되고, 심할 경우 수확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피해가 크다. 특히 구스베리, 장미, 포도 같은 과수와 관상식물에서 문제가 된다.
4. 포도밭의 공포, 살해자란 이름의 곰팡이

흰가루병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종은 단연 ‘포도 흰가루병’이다. 학명은 Uncinula necator이며, 이 중 ‘necator’는 라틴어로 ‘살해자’를 뜻한다. 이 곰팡이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유럽으로 유입되어 포도 재배지에 급속히 퍼졌다. 특히 마데이라와 테네리페에서는 포도 산업이 거의 전멸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살해자’라는 학명이 과장이 아닐 만큼 지금도 포도 농가에겐 가장 강력한 천적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포도농가가 이 병에 대비하기 위해 해마다 철저한 방제를 반복하고 있다.
5. 정원에서의 실전 대처법
흰가루병은 겨울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장미나 구스베리처럼 균이 새순 끝에 월동하는 식물의 경우 가지치기는 효과적인 방제수단이 된다. 또한 병에 덜 걸리는 품종을 선택하거나 햇볕과 통풍이 잘되는 재배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병이 심하게 퍼졌을 경우 가정 정원에서도 방제를 위한 살균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장미나 구스베리 재배자들은 흰가루병을 해마다 겪는 고민거리로 여긴다.
마무리
흰가루병은 ‘밀가루처럼 가벼운 곰팡이’이지만 그 피해는 결코 가볍지 않다. 병의 본질을 이해하고, 식물과 함께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대처해 나가는 것이 정원을 지키는 길이다. 눈에 잘 띄는 만큼 초기에 발견하고 대응하면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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