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이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벌레는 그때그때 다르다
우리는 책이나 옷에 구멍이 나 있으면 자연스럽게 “좀 먹었다”고 말한다. 표현은 통용되지만 실제로 이 피해를 남기는 벌레는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다듬이벌레(booklouse)는 영어 이름과 달리 곰팡이나 풀 같은 유기물을 먹으며 종이 자체를 갉지는 않는다. 일상에서는 ‘책벌레’라고도 불리지만, 실제로 종이에 물리적 손상을 주는 건 좀벌레(silverfish)나 딱정벌레 유충, 또는 흰개미류다.
옷도 마찬가지다. ‘좀 먹었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 의류나방의 유충이 옷에 구멍을 낸다.
옷을 갉는 건 의류나방 유충
의류나방(Tineola bisselliella)은 작고 눈에 띄지 않는 나방이다. 성충(어른 나방)은 입이 퇴화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산란만 하고 짧은 시간 내에 죽는다.
주범은 알에서 부화한 유충(애벌레)이다. 이 유충이 울(wool), 양모, 캐시미어, 알파카 같은 동물성 섬유를 선택적으로 갉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이런 섬유에는 케라틴(keratin)이라는 동물성 단백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유충은 이 케라틴을 분해해 영양분으로 삼는다. 반면에 면, 린넨, 폴리에스터 같은 식물성·합성 섬유는 아예 먹이로 삼지 않는다.
피해는 작지만 분명하다
유충은 활동 반경이 매우 좁다.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자신이 갉아낸 섬유조각을 실처럼 엮어 만든 보호막(튜브형 케이스) 안에 숨어 지낸다. 그 안에서 자리 잡고 자라기 때문에 움직이며 여러 곳을 갉지 않고 한 지점만 계속 갉아 작고 깊은 구멍 하나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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