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맥각(麥角, Ergot)이란 무엇인가

Egaldudu 2025. 4. 30. 09:43

호밀에 난 맥각

 

맥각이라는 이름의 유래

프랑스에서는 곡식 이삭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자라난, 길쭉하고 검은색의 단단한 덩어리에르고(ergot)’라 불렀다. 닭발이나 뿔처럼 생긴 이 곰팡이 덩어리는 생김새에서 유래한 이름이며, 이후 영어권에서도 같은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어에서 쓰이는맥각(麥角)’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프랑스어 ergot를 번역해 만든 한자어. 이후 중국과 한국에도 이 표현이 도입되어 지금까지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의 사용과 의학적 가치

맥각은 중세 유럽, 특히 독일과 프랑스에서 여성 질환 치료에 많이 사용되었다. 자궁을 수축시키는 작용이 있어 출산을 유도하거나 산후 출혈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는  약재로 여겨졌다. 당시는 분만 중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맥각은 산모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귀한 약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효능은 약초학자, 조산사, 민간 약방 등을 통해 실제로 활용되었으며, 독일어권에서는 그 의학적 용도를 반영해 ‘Mutterkorn(무터코른: 어머니의 곡물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만 효과가 강한 만큼 복용량 조절이 어렵고 부작용 위험도 컸기 때문에 사용에는 항상 제한이 따랐다. 약이 곧 독으로 바뀌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독성 작용과 에르고티즘

맥각은 약으로 유용했지만 그 안에 포함된 독소는 강력한 신경계 및 혈관계 작용을 일으켰다. 과도한 섭취 시 초기에는 두통, 구토, 발열이 나타나고, 이후에는 사지 말단이 저리거나 타는 듯한 통증, 심할 경우 혈관 수축에 따른 괴사와 절단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증상은성 안토니우스의 불(Saint Anthony’s Fire)이라 불렸고, 나중에 에르고티즘(ergotism)’이라는 의학적 이름이 붙었다. 중세 유럽 전역에서 이 현상은 때때로 집단중독 사태로 이어졌고, 이유를 모른 채 신의 형벌, 악마의 저주로 여겨지는 경우도 많았다.

 

더욱이 맥각 독소 중 일부는 환각을 일으키는 작용도 있어서 심한 경우 정신착란과 비현실적인 환상, 극단적일 경우 광기와 발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이러한 맥각의 정체는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곰팡이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로 밝혀졌다.

 

현대에서의 정제·제거 방법

오늘날 맥각은 식품 곡물에서 엄격히 제거 대상으로 분류되며, 농업 단계부터 수확, 선별, 제분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자연상에서도 맥각균(Claviceps purpurea)은 호밀, , 보리 등에 기생할 수 있지만, 현대 농업에서는 종자 관리와 병해 방제를 통해 대부분 제거된다.

 

한편, 약용으로 활용되는 경우에는 곰팡이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특정 알칼로이드 성분(: 에르고타민, 에르고메트린)만을 추출해 정확한 용량으로 정제·처방된다의학적으로는 여전히 산후 출혈 조절 등에서 일부 사용되지만, 정확한 관리와 전문적 처방 없이는 사용되지 않는다.

 

곡물 소비 시 주의점

오늘날 시중에 유통되는 곡물은 대부분 안전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비공식 유통처나 직접 수확한 곡물을 사용할 경우에는 육안 검사가 필요하다. 맥각은 대체로 길쭉하고 어두운 색(검정~자주색)을 띠며, 정상적인 낟알보다 크고 딱딱하다. 뿔처럼 튀어나온 형태가 특징적이며, 한눈에 보기에도 일반 곡물과 다르다.

 

이러한 곡물이 섞여 있다면 식용을 피해야 하며, 가루로 갈려 섞여 있더라도 불쾌한 냄새이상한 색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특히 호밀, 통밀, 현미 등 정제가 덜 된 곡물을 직접 구매할 때는 한 번쯤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