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알을 낳는 포유류
포유류는 알을 낳지 않는다. 이 말은 거의 맞을 뻔한 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틀렸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살아 있는 새끼를 낳는다. 인간도, 코끼리도, 심지어 돌고래도 그렇다. 그러나 호주의 강가와 숲속을 거니는 오리너구리(Platypus)와 가시두더지(Echidna)는 그렇지 않다.
이 둘은 포유류이면서도 알을 낳는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듯 포유류가 진화하기 이전의 모습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수억 년 전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넘어오는 그 진화의 과정을 그대로 품고 있는 것이다.
오리너구리(Platypus)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43656021
오리너구리는 한눈에 봐도 기묘한 생명체다. 포유류인데 부리가 달려 있고, 물갈퀴가 있으며, 알을 낳는다. 마치 여러 동물의 특성을 조합한 듯한 외형 덕분에 처음 발견 당시 학자들은 조작된 표본이라며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리너구리는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오래된 진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오리너구리는 호주의 강가나 호수 주변에서 서식한다. 물속에서는 마치 물고기처럼 유연하게 헤엄치고, 육지에서는 짧은 다리로 느릿하게 걷는다. 물갈퀴가 달린 발은 헤엄칠 때는 펼쳐지고, 땅 위를 걸을 때는 접혀져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 알을 품다
오리너구리는 포유류임에도 강가에 굴을 파고 알 두개를 낳는다. 어미는 이를 7일에서 14일 동안 알을 품는다. 그 후 알을 깨고 나온 약 25mm 크기의 작은 새끼들은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상태로 어미의 젖을 먹으며 자란다.
● 젖꼭지가 없는 젖 먹이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오리너구리 어미에게는 젖꼭지가 없다. 대신 피부에서 직접 젖이 스며나온다. 이 방식은 유선 필드(Milchdrüsenfeld)라 불리며, 새끼는 어미의 피부를 핥으며 영양분을 얻는다. 부리로 젖을 쉽게 핥아먹을 수 있도록 진화한 모습이다.
● 전기 감지 능력
오리너구리의 부리는 단순히 먹이를 먹기 위한 도구만은 아니다. 그 속에는 수천 개의 전기수용체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물속에서 미세한 전기 신호를 감지해, 진흙 속에 숨은 작은 갑각류나 곤충을 정확히 찾아낸다. 포유류 중 전기 감지 능력을 가진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오리너구리다.
가시두더지(Echidna)
가시두더지는 오리너구리와 함께 단공류(Monotremes)에 속하는 또 다른, 알을 낳는 포유류다. 그 이름처럼 온몸이 가시로 뒤덮여 있으며, 두더지처럼 땅을 파며 생활한다. 호주와 뉴기니의 숲속이나 초원에서 발견되며, 놀라울 정도로 환경에 잘 적응해 살아간다.
● 알을 낳는 주머니
가시두더지의 번식 방식은 독특하다. 암컷은 단 하나의 알을 낳는다. 하지만 그 알은 땅에 놓이지 않고, 어미의 배에 있는 털 주머니에 보관된다. 이 주머니는 알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며, 약 10일 뒤 알이 부화하면 작은 새끼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부화한 새끼는 15mm에 불과하지만, 털 주머니 안에서 약 6주에서 8주 동안 자라면서 점차 가시가 돋아난다.
● 젖꼭지 없는 젖 먹이기
가시두더지 역시 오리너구리처럼 젖꼭지가 없다. 어미의 피부에서 젖이 스며나오면 새끼는 이를 핥으며 영양분을 얻는다. 자연의 방식이 그들에게 가장 최적화된 생존 방법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 방어와 생존의 달인
가시두더지는 위험이 닥치면 땅속으로 몸을 숨기거나, 온몸에 가시를 세우며 방어 자세를 취한다. 천적이 접근하면 단단한 가시는 효과적인 무기가 되어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 만든다.
결론: 진화의 모자이크
포유류가 파충류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은 수많은 화석 증거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오리너구리와 가시두더지에게는 파충류였을 때 알을 낳았던 그 진화의 흔적이 지금도 독특한 형태로 남아 있다.
이 두 생명체는 진화의 긴 여정 속에서 주류를 벗어나 자신들만의 길을 걸어왔다. 그 결과, 고대 파충류의 특성과 포유류의 특징을 동시에 간직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존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진화의 흔적이며, 동시에 자연의 법칙이 얼마나 다채롭고 예측 불가능한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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