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지렁이는 왜 비가 오면 땅 위로 나올까?

Egaldudu 2025. 5. 13. 12:28

비가 내린 뒤 도로와 잔디밭을 보면 지상으로 올라온 지렁이들이 쉽게 눈에 띈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지렁이가 비오는 날씨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실제로 지렁이는 습한 환경을 좋아한다. 그러나 비가 오면 땅 위로 나오는 이유가 단순히 빗물을 좋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1. 지렁이의 호흡 방식: 피부를 통한 산소 흡수

지렁이에게는 폐가 없다. 그들은 전적으로 피부를 통해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피부호흡(cutaneous respiration)이라 불리는 이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피부가 항상 촉촉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지렁이의 피부는 얇고 점액질로 덮여 있는데, 이 점액이 산소를 흡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점액이 충분히 있어야만 산소가 피부를 통해 체내로 전달된다. 만약 피부가 건조해지면 산소가 체내로 전달되지 못해 질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지렁이는 건조한 환경을 극도로 싫어하며, 햇빛이 강한 낮 시간에는 대부분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지낸다.

 

2. 폭우가 쏟아지면 벌어지는 일

지렁이가 땅속에 사는 이유는 단순히 빛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생존에 적합한 습기와 온도가 지하에서는 잘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한 비가 내리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지렁이들이 파놓은 지하터널은 좁고 길게 이어진 통로로 평소에는 공기가 잘 흐른다. 그러나 폭우가 쏟아지면 빗물이 빠르게 스며들어 굴이 물로 가득 찬다. 지렁이의 피부 호흡에는 공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물이 차오르면 호흡이 불가능해진다.

 

익사의 위험에 처한 지렁이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땅 위로 올라온다. 이 행동은 단순히 빗물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긴급 탈출에 가깝다.

 

3. 지렁이의 방향 감지 능력

지렁이는 무작정 땅 위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비가 내릴 때 지면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을 통해 방향을 감지한다.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땅에 울리는 미세한 진동을 느끼고, 물이 고이지 않는 안전한 경로를 찾아 이동한다.

 

이러한 진동 감지능력은 단순히 물을 피하는 데만 쓰이지 않는다. 천적이 다가올 때나 인간의 발걸음에도 반응하여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두더지와 같은 포식자가 땅을 파고 접근할 때도 지렁이는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고 재빨리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다.

 

4. 지상에서의 위험 요소

폭우를 피해 땅 위로 올라온 지렁이들은 이제 다른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빗줄기가 멈추고 햇빛이 나면 도로나 인도로 올라온 지렁이들은 빠르게 수분을 잃기 시작한다지렁이의 피부는 촉촉함을 유지해야만 호흡이 가능한데,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점액이 증발하면서 호흡이 중단된다. 그래서 건조한 공기에 오래 노출되면 생존할 수 없다.

 

또한, 지면 위로 기어나온 지렁이들은 포식자들에게 쉽게 노출된다. 새들은 비가 그친 뒤 땅 위의 지렁이를 찾아다딘다. 개미와 같은 곤충들도 그들을 공격한다. 게다가 도로 위로 올라온 지렁이들은 지나는 차량에 깔리거나 사람들에게 밟히기도 한다.

 

5.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선택

지렁이가 비오는 날 땅 위로 기어 다니는 모습은 단순한 습기 사랑이 아니다. 그들은 폭우로 인한 익사 위험을 피해 필사적으로 땅 위로 탈출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위험에 노출되지만 어쩌면 그것이 물에 잠겨 익사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