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자바 슬로우로리스(Javan slowloris)의 느린 귀환

Egaldudu 2025. 5. 29. 16:21

자바섬의 사왈산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나무를 타는 자바 슬로우로리스

By Jefri Tarigan - 자작,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위기에 처한 슬로우로리스

자바 슬로우로리스(Nycticebus javanicus)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만 서식하는 고유종 영장류. 둥근 눈과 작은 얼굴, 느린 동작으로 인해 귀엽다는 인상을 주지만, 이 동물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 위기 상태에 처한 영장류 중 하나로 분류된다.

 

불법 애완동물 거래와 서식지 파괴로 인해 지난 수십 년간 개체 수가 급감했으며, IUCN 적색목록에서는위급(Critically Endangered)’ 등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자바 슬로우로리스는 IUCN, CI, 브리스톨 동물학회가 공동 발표하는 세계 25대 위기 영장류 목록에도 여러 차례 포함된 바 있다.

 

고립된 섬에 남겨진 유일한 개체군

슬로우로리스(Slow lorises)Nycticebus 속에 속하는 야행성 원시 영장류로, 동남아시아 전역에 걸쳐 여러 종이 분포한다. 현재 최소 8종이 유효한 독립 종으로 분류되며, 이들은 방글라데시부터 필리핀, 인도차이나, 수마트라, 보르네오까지 다양하게 서식한다.

 

그중 자바 슬로우로리스는 자바섬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종이다. 서식지가 섬 하나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이 종의 보존은 더욱 시급하다. 자바섬은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슬로우로리스가 살 수 있는 자연 서식지는 20% 미만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독특한 생태적 특징

자바 슬로우로리스는 이름처럼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동물이다. 시속 1.6km 정도의 속도로 나뭇가지를 조심스럽게 기어 다니며, 포식자를 피할 때도 도망치기보다 가만히 멈춰 위장을 택한다.

 

야행성이며, 주요 먹이는 열매, 나무 수액, 곤충, 꽃꿀, 작은 척추동물 등으로 구성된다. 혀는 수액을 핥아먹기에 적합하고, 아랫니는 빗 모양으로 생겨 그루밍과 섭식에 모두 사용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슬로우로리스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독을 지닌 영장류라는 사실이다. 자바 슬로우로리스도 예외가 아니며, 겨드랑이 부위의 분비샘에서 생성된 독을 이빨에 묻혀 공격에 활용한다. 이 독은 포식자 방어뿐 아니라 새끼 보호 등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된다.

슬로우로리스 실물 크기

By Silke Hahn,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보호를 향한 느리지만 단단한 걸음

자바 슬로우로리스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불법 애완동물 거래는 가장 직접적인 위험이다. 귀여운 외모로 인해 유튜브나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얻었고, 그 수요는 곧 밀렵 증가로 이어졌다.

 

문제는 이 종이 사람을 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독을 가지고 있어 물릴 경우 위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밀렵꾼과 상인들은 로리스의 송곳니를 니퍼나 펜치로 잘라내거나 뽑는 행위를 자행하며, 이는 감염과 스트레스, 면역 저하로 이어져 많은 개체가 포획 상태에서 죽는다.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와 다양한 NGO, 국제기구들은 자바 슬로우로리스를 보호하기 위한 다각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식지 보호, 불법 거래 단속, 지역 주민 교육, 대중 인식 개선 캠페인 등은 모두 이 느린 영장류의 생존을 위한 조심스러운 시도다.

 

마무리하며

자바 슬로우로리스는 느리게 움직이지만, 그 존재는 분명하고 진화적으로 독특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바의 숲 어딘가에서 나뭇가지 위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이 생명체가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위협받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