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티나무(Tinamus, 도요타조)의 화려한 알, 진화의 실패인가

Egaldudu 2025. 5. 29. 11:56

티나무(Tinamus major, 큰티나무)

By Anthony Batista, CC BY 4.0, wikimedia commons.

눈에 띄는 알, 위장과는 거리가 먼 선택

중남미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티나무(Tinamus major)는 지면 가까운 낙엽 더미 안에 둥지를 트는 조류다. 이 종은 몸길이 약 43cm, 몸무게 약 1,100g으로 작은 칠면조 크기와 형태를 가진다. 몸빛깔은 회갈색으로 시든 잎들 사이에 섞이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새가 낳는 알은 그와는 정반대다. 티나무의 알은 짙은 청록색 또는 형광에 가까운 광택을 띠며, 어두운 숲 바닥에서 오히려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땅에 둥지를 트는 새는 위장된 색의 알을 낳는 데 비해, 티나무의 알은 그와 정반대의 색을 띠고 있다.

 

암컷은 떠나고, 부화와 새끼 돌봄은 수컷의 몫

티나무(Tinamus major)의 알

By Andres Cuervo, CC BY 2.0, wikimedia commons.

 

티나무는 일처다부성(polyandry)을 보이며, 이 종의 번식에서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수컷의 단독 양육이다. 암컷은 수컷과 교미한 후 평균 4개의 알을 낳고 곧바로 둥지를 떠나며, 수컷만 남아서 부화할 때까지 알을 품는다. 부화 이후에도 약 3주 동안 새끼를 돌보며, 그 기간이 지나면 수컷 역시 다른 암컷을 찾아 다시 번식활동에 참여한다.

 

이러한 수컷 단독 양육 체계는 티나무 전체 47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번식 형태, 조류 중에서도 드문 방식이다.

 

유전적 분석으로 확인된 부성 불확실성

암컷은 한 번의 번식기(8개월) 동안 보통 5~6마리 수컷의 둥지에 알을 낳을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 패트리샤 브레넌(Patricia Brennan)에 따르면 유전 분석 결과 수컷이 돌보는 알의 약 60%는 해당 수컷의 친자가 아니며, 부화한 새끼의 24%도 유전적으로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암컷이 여러 수컷과 교미한 후, 각기 다른 둥지에 알을 분산시켜 낳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번식 구조는 일반적인 진화 이론과 충돌하는 면이 있다. 수컷이 친자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단독으로 양육에 투자하는 전략은 진화적으로 안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친자 확인이 가능한 구조에서만 수컷 양육이 유지된다.

 

인식 능력 없이 모든 알을 돌본다

브레넌의 실험은 티나무 수컷이 가짜 알이나 다른 개체의 새끼를 구분하지 못한 채 모두 동일하게 포란하고 양육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알을 인위적으로 교체하거나, 다른 무리에서 분리된 새끼를 둥지에 넣어도 거부하거나 배척하는 행동은 관찰되지 않았다.

 

이는 티나무 수컷에게 부성 인식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의 유전적 이익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알과 새끼를 돌보는 양육 방식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포식률과 분산구조의 상관관계

야생 상태에서 관찰된 결과에 따르면, 티나무 둥지의 알 가운데 80%가 포식자에게 먹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된 포식자는 뱀이며, 한 번에 최대 3개 정도의 알만을 삼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한 둥지에 모든 알을 집중시키기보다 여러 둥지에 알을 분산시키는 구조가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이 점에서 암컷의 알 분산 행동과 수컷의 단독 양육 구조는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알의 색은 시각적 신호로 기능한다

점박이티나무(Tinamus guttatus)의 알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알의 화려한 색깔 역시 위장 실패가 아니라 다른 암컷에게 둥지 위치를 알리는 시각적 신호로 해석된다. 알이 눈에 잘 띌수록 더 많은 암컷이 동일한 둥지에 알을 낳게 되며, 이로 인해 둥지 내 알의 개수가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 포식자의 섭취 제한량을 대입하면 둥지 내 알이 많을수록 일부의 생존률도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온다.

, 티나무는 포식 위험이 높은 환경에서 위험을 분산하고 생존률을 높이기 위한 방식으로 알의 색깔과 번식 구조를 진화시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 실패처럼 보이는 전략, 그러나 지속된 선택

겉보기에는 불리해 보이는 티나무의 번식 전략은 오랜 시간 동안 선택되어 유지된 구조다. 형광색 알, 수컷 단독 양육, 부성 불확실성이라는 요소는 모두 포식률이 높은 환경에 맞춰 위험을 분산하고 생존 확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

 

티나무는좋은 어미희생적인 아비라는 도덕적 관점으로 해석되기보다는, 환경에 적응한 복잡한 번식 양상의 한 사례로 이해되어야 한다. 진화는 때때로 직관에 반하는 방식을 통해 종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