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작지만 집요한 동반자: 인류와 ‘이(louse)’의 공진화(co-evolution)

Egaldudu 2025. 5. 31. 15:24

털을 고르며 기생충을 제거하는 개코원숭이 (출처: 픽사베이)

우리는 평소 '이(louse)'를 더럽고 귀찮은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기생 곤충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 이주, 문화적 진화를 추적한다. 이 작은 절지동물은 우리 머리카락 속에서, 옷 주름 사이에서, 심지어 음모 사이에서 인류와 함께 진화해 왔다.

 

1. 공진화의 증인, 기생충

공진화(co-evolution)’란 두 생물이 상호 영향을 주며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louse)는 대표적인 공진화 생물이다. 인간이 다른 유인원과 진화적 분기를 이룬 시점부터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질 때까지 항상 인간과 함께 이동하며 적응해 왔다.

 

이들은 인간의 피부 온도, 피지 분비량, 털 굵기에 맞게 변화했고, 지금은 숙주가 바뀌면 생존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특이적으로 진화한 종도 많다.

 

2. 인간에게 기생하는 이(louse) 세 종류

(louse)는 전 세계 수많은 동물에 기생하는 곤충으로,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사람에게서만 발견되는 이는 세 가지로 각각 두피, 의복, 그리고 음모 부위에 특화된 서식 형태를 가지고 있다.

 

먼저 머릿니(Pediculus humanus capitis)는 주로 두피와 모근 부위에 서식하며, 머리카락 굵기에 맞춰 알을 부착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들은 주로 어린이의 머리에서 발견되며, 모발 구조에 매우 특화된 형태로 진화해 있다.

 

다음은 몸니(Pediculus humanus humanus)로, 옷 주름이나 피부 표면에서 발견된다. 이 종은 인간이 의복을 입기 시작한 이후 새로운 서식지에 적응하면서 머릿니에서 분화된 형태로 진화했다. 특히 추운 기후에서 인간이 옷을 착용함에 따라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사면발이(Pthirus pubis)는 주로 음모나 겨드랑이 부위에 서식하며, 고릴라에게서 유래한 이종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적 분석에 따르면 이들은 약 300만 년 전 인간에게 전파되었으며, 인간과 고릴라 사이에 접촉 (둥지 공유 또는 포식) 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3. DNA 속에 새겨진 인류의 이주 경로

머릿니의 미토콘드리아 DNA(mtDNA)와 핵 DNA의 마이크로새틀라이트(microsatellites)를 분석하면 전 세계 인구집단의 이동 경로가 보인다.

 

과학자들은 전 세계 25개국에서 수집한 274개의 머릿니 샘플을 비교 분석한 결과, 유전적으로 두 계통으로 뚜렷이 나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 계통은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오직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발견된다.

 

특히 아메리카 지역에서 채집된 머릿니는 유럽계 이주민과의 접촉에 따라 유전적 변이를 보이며, 이는 인간이 대륙을 이동할 때 기생충 역시 함께 옮겨갔다는 사실을 명확히 뒷받침한다.

 

4. 인류학적 단서로서의 기생충

재미있는 점은, 온두라스에서 채집된 머릿니의 유전자가 동남아시아 기원 계통과 닿아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인간이 베링 육교를 통해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이동했음을 뒷받침한다.

 

또한 일부 샘플은 폴리네시아 계열과 유사한 유전자형을 보이며, 이는 고대 해양 항해를 통한 인류 확산 가능성까지 암시한다과학자 데이비드 리드(David Reed)는 이를 두고 머릿니는 머리에 얹고 다니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표현했다.

 

5. 마무리하며

이들은 더럽고 불편한 존재로 인식되지만 사실상 인류의 생물학적 타임캡슐이다. 우리 몸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함께 살아온 이 작은 곤충은 오늘날 분자생물학과 고인류학, 유전학이 만나는 중요한 접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