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바닷물 속에 뿌리내린 숲, 맹그로브

Egaldudu 2025. 6. 6. 13:10

필리핀의 팔라완 섬,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역의 수로를 따라 이어진 맹그로브 숲

 

경계에 뿌리내린 이름, 맹그로브

맹그로브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경계, 조수의 흐름 속에 뿌리내린 독특한 식물이다. 이들은 단순한 나무 군락이 아니라 생태계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복합적 시스템에 가깝다. 조수에 잠겼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는 땅에 정착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뿌리는 깊고 견고하며 생존전략은 매우 정교하다.

 

맹그로브(mangrove)’라는 영어 단어는 스페인어 mangle 또는 포르투갈어 mangue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이들 단어는 남미 지역의 토착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영어에서는 처음에 mangrow라는 형태로 쓰이다가, ‘을 뜻하는 grove와 결합되어 지금의 형태가 정착되었다.

 

바닷물 속 삼림, 맹그로브 숲

맹그로브 숲은 열대와 아열대 지역의 하구, 기수역의 염성 습지에 형성되는 삼림 생태계다.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인도,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에 널리 분포하며, 일본 오키나와현과 가고시마현에도 자연 분포한다. 혼슈 일부 지역에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맹그로브 숲도 존재한다.

 

숲은 파도가 약한 강 하구 또는 내만과 같은 얕은 해역에 형성되며, 조수 간만의 영향으로 진흙이 쌓이기 쉬운 지역이 적합하다. 외곽은 조수에 따라 만조 시 나무의 줄기와 잎까지 잠기기도 하지만, 내륙 쪽으로 갈수록 직접적인 해수 침투는 줄고 점차 육상 식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내염성에 따라 식물의 군락 분포가 달라지게 만든다.

 

지역에 따라 키 차이도 크다. 아열대 지역에서는 수 미터 남짓한 숲이 형성되기도 하고, 열대 지역에서는 30미터에 이르는 큰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는 경우도 있다.

대형 맹그로브가 줄지어 선 해안 숲, 거대한 생태장벽을 이룬다 (출처: 픽사베이)

진흙 위의 숲, 복잡한 생명 구조

맹그로브 숲은 간석지의 성질을 가지면서도 수목이 밀집된 공간이다. 간석지는 유기물이 집중되고 분해되는 장소로 생산성이 매우 높지만, 표면 구조가 단순해 생물 다양성 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반면 맹그로브는 복잡한 뿌리 구조와 줄기 형태를 통해 다층적 서식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끼와 지의류가 줄기에 번식하고, 뿌리 사이에는 다양한 동물이 숨어 지낸다.

 

토양은 유기물이 풍부하나 산소가 부족하여 혐기성 분해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황화수소 같은 가스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한 조건에서도 맹그로브는 생존할 뿐 아니라, 그 환경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주변 생태계까지 구조화한다.

 

진정 맹그로브와 그 독특한 생식 전략

맹그로브 숲을 구성하는 식물 가운데 바닷물과 조수 환경에 특화되어, 오직 맹그로브 서식지에서만 자라는 종을진정 맹그로브(true mangrove)’라 부른다.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약 70종이 확인되어 있으며, 이들은 16개 과, 20개 속에 속한다.

 

이들 식물은 생식방식에서도 독특한 전략을 보인다. 일부 종은 가지에 달린 열매 속에서 이미 발아한 상태로 성장을 시작하며, 충분히 자란 뒤에는 뿌리 끝에 새싹이 붙은 채 열매가 떨어진다. 이러한 구조를 '태생 맹그로브 종자체(viviparous mangrove propagule)'라 한다.

 

떨어진 종자는 해류를 타고 이동하거나, 어미 식물 아래에 바로 박혀 그 자리에서 성장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해류 산포 전략은 좁은 해안선을 따라 종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땅 위로 솟은 뿌리, 공기를 마시다

맹그로브가 살아가는 진흙질 토양은 통기성이 낮고 산소가 거의 없다. 일반적인 뿌리 구조로는 호흡이 어려운 조건이다. 이에 맹그로브는 공중뿌리(pneumatophore)를 진화시켰다. 이 뿌리는 땅 위로 솟아올라 대기 중의 산소를 직접 흡수하며, 마치 작은 기둥처럼 보인다.

 

일부 종은 수면 위로 뻗은 지주뿌리(stilt root)를 발달시켜 나무 전체를 지지한다. 이 구조는 침식을 막고, 바닷물의 흐름 속에서도 뿌리를 안정적으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주뿌리를 드러낸 어린 맹그로브들 (출처: 픽사베이)

염분을 다루는 능력

맹그로브는 바닷물의 염분이라는 생존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정교한 메커니즘을 갖추었다. 잎에 염분을 배출하거나, 뿌리에서 소금기를 걸러내는 능력은 종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종은 염분을 직접 배출해 잎 표면에 소금 결정이 맺히며, 다른 종은 염분 흡수를 차단하는 구조를 지닌다. 이러한 염분 조절 능력 덕분에 맹그로브는 일반적인 식물이 견딜 수 없는 고염 환경에서도 번성할 수 있다.

 

해안을 지키는 숲, 생물의 피난처

맹그로브는 단지 식물 군락이 아니다. 복잡한 뿌리 구조는 파도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침식을 줄이며, 쓰나미나 폭풍에 대한 자연 방어선을 형성한다. 수많은 생물이 맹그로브 뿌리 사이에서 서식하거나 일시적으로 은신처로 삼는다. 갯게, 진흙고동, 어린 물고기와 같은 종들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특히 일부 생물은 맹그로브에만 의존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 숲의 보전은 곧 해양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직결된다. 생물이 많다는 의미는 단지 종의 수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내는 상호작용과 기능적 안정성까지 포함한다.

 

맹그로브의 위기와 보전 과제

오늘날 맹그로브는 다양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양식장 조성, 도시 팽창, 무분별한 벌목, 해수면 상승은 맹그로브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특히 맹그로브와 공생관계를 이루던 연체동물과 게류의 감소는 토양 통기성과 영양순환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국제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맹그로브 나무만 보호해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이 숲과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의 네트워크 전체를 보전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