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 아래
적도 아래 갈라파고스 제도 해안. 검은 화산암 위에 펭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푸른 바다와 맹그로브 숲을 배경으로, 그들은 햇살을 쬐거나 조용히 물속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 풍경은 많은 사람들의 상식과 어긋난다. 펭귄은 차가운 남극, 얼음과 눈으로 덮인 대륙에만 사는 동물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라파고스펭귄(Galápagos penguin, Spheniscus mendiculus)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 펭귄은 실제로 적도를 가로지르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일부 섬에 서식한다. 이는 전 세계 17종의 펭귄 가운데 가장 북쪽에 분포하는 종이며, 유일하게 적도 아래에서 살아가는 펭귄이다. 평균 키는 약 50cm로 비교적 작은 편이고, 눈가에서 목선을 따라 이어지는 흰색 선이 특징적이다. 그들의 생김새는 남극의 황제펭귄보다는 남미 해안의 훔볼트펭귄과 더 가깝다.
해류와 먹이
겉보기엔 뜨거운 환경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펭귄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결정적 이유는 해류에 있다. 갈라파고스 해역에는 남극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훔볼트 해류(Humboldt Current)와 적도 아래 수심 깊은 곳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크롬웰 해류(Cromwell Current)가 만난다. 이 두 해류는 영양분이 풍부한 심층수를 바다 표면으로 끌어올리며, 갈라파고스 주변 바다를 펭귄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생산력 높은 생태계로 만든다.
결국 갈라파고스펭귄은 추위가 아니라 풍부한 먹이 자원 덕분에 살아갈 수 있다. 생물지리학적으로 볼 때, 펭귄의 분포는 위도나 기온보다는 차가운 해류와 해양 생태계의 생산성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덕분에 열대 섬에서도 펭귄이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남극의 상징
대중의 인식 속에서 펭귄은 ‘남극 동물’로 각인되어 있다. 이는 수십 년간 방송과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준 황제펭귄의 극한 생존기 덕분이다. 머리에 눈이 쌓인 수컷이 알을 품고, 수백 마리의 무리가 추위에 맞서 몸을 웅크린 채 견디는 모습은 일종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실제 펭귄의 분포는 훨씬 더 넓고 다양하다. 펭귄은 모두 남반구에 서식하지만, 그중에서도 남극 대륙에 사는 종은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훨씬 더 온화한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남단,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극 주변 섬들에 분포한다.
특히 브릴렌펭귄(Spheniscus demersus, 아프리카펭귄)은 남아프리카 해안의 뜨거운 기후에서도 잘 살아가며, 남미의 훔볼트펭귄은 갈라파고스와 마찬가지로 차가운 훔볼트해류 덕분에 열대 가까운 지역까지 북상해 있다.
실제 분포
갈라파고스펭귄은 독특한 서식 환경에 적응했지만 매우 불안정한 조건 속에 놓여 있다. 엘니뇨(El Niño) 현상이 일어나면 따뜻한 표층수가 해류를 덮어, 차가운 해류의 상승 흐름이 약해진다. 이로 인해 플랑크톤과 어류의 수가 줄고, 펭귄은 심각한 먹이 부족에 시달린다.
실제로 1982년부터 1983년, 그리고 1997년부터 1998년에 걸친 강한 엘니뇨 시기에는 개체 수가 절반 이상 급감했으며, 이로 인해 한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도 개체 수는 수천 마리에 불과하며, 회복 속도는 매우 더딘 편이다. 이 사례는 기후변화가 서식지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상식을 넘어
적도 아래, 화산섬 해안에 사는 펭귄. 이 존재는 단지 한 종의 특이한 분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온 자연의 이미지가 얼마나 단편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자연이 가진 다양성과 적응력이 얼마나 유연한지를 말해주는 강력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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