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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사람들의 역사와 의미

Egaldudu 2025. 6. 24. 18:15

흩어짐을 넘어선 인간의 이야기

사람이 사는 곳에 이동이 없었던 적은 없다.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났고, 누군가는 폭력과 탄압을 피해 쫓기듯 떠났다. 그러나 단순한 '이주' '디아스포라(Diaspora)'는 같지 않다. 디아스포라는 타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공동체가 본국 또는 고향과의 정체성을 유지하거나 복합적인 소속감을 갖는, 좀 더 깊고 복잡한 현상을 말한다.

 

이 말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어 'διασπορά(디아스포라)', '흩뿌리다'라는 단어다. 문자 그대로 '어떤 곳에 뿌려진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처음에는 유대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가리키는 데 주로 사용됐지만, 오늘날 디아스포라는 특정 민족이나 공동체가 고향을 떠나 타지에 정착하며, 그 과정에서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는 전반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데 쓰인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개념의 원형

성괘와 함께 로마에서 추방당하는 유태인들 (텔아비브 디아스포라 박물관)

By Dan Hadani collection, CC BY 4.0, wikimedia commons.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처음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유대인 공동체의 흩어짐(離散)과 관련해서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바빌론 유수, 로마제국의 압제 등 수천 년 동안 유대인들은 전 세계로 흩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 곳에 정착하든 공동체를 만들고, 언어와 종교, 문화를 유지했다.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이 학문적·사회적으로 확립된 것도 바로 이 유대인의 사례 덕분이었다.

 

중세 유럽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대인들은 종종 박해와 차별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상업, 금융, 학문 등 여러 분야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쌓아갔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이스라엘의 건국은 세계 각지 유대인 공동체의 존재와 결속이 어떻게 정치적 현실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강제 이주의 비극,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가 항상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는 그 대표적인 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지속된 대서양 노예무역은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을 강제로 신대륙으로 이주시켰다. 뿌리째 뽑혀 미국, 카리브해, 남미 등지로 옮겨진 사람들은 자유를 잃었고, 그들의 후손은 오랜 세월 차별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는 음악, 음식, 종교, 언어 등 다방면에서 자신들의 문화적 흔적을 남겼다. 재즈, 블루스, 힙합 같은 음악이 대표적이다. 억압의 역사를 뚫고 정체성을 계승한 이 흐름도 분명 디아스포라의 일부다.

 

한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한인 디아스포라

한국인 디아스포라 지도

By EstebanF at English Wikipedia, CC BY 3.0, wikimedia commons

 

한국인에게도 디아스포라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빈곤 속에서 많은 한국인이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지로 이주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이 흐름은 더 확산됐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크고 작은 한인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다. 고려인, 조선족, 재미동포, 재일교포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졌지만, 공통적으로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고려인은 구소련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후, 소련 해체와 함께 새로운 정체성의 변화를 겪었다. 조선족은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해 독자적 공동체를 유지했고, 재미동포는 미국 사회 내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이민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이처럼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각기 다른 지역적·정치적 환경 속에서 뿌리를 지키거나 재구성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또 다른 사례, 아르메니아의 상처와 흩어짐

20세기 초 아르메니아인들이 겪은 학살과 그로 인한 대규모 이주는 또 하나의 비극적 디아스포라다. 오스만 제국 시기 수십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목숨을 잃었고, 생존자들은 전 세계로 흩어졌다.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에 아르메니아 공동체가 뿌리내린 것은 그때의 일이다. 현재도 이들은 조국의 역사와 문화를 기억하며, 본국과 연결을 이어가고 있다.

 

디아스포라, 현대적 의미로 확장되다

오늘날 디아스포라는 단순히 과거의 강제이주나 고난을 뜻하지 않는다. 자발적 이주와 경제적 이동도 새로운 형태의 디아스포라를 만들어냈다. 첨단통신망과 교통의 발달로 세계는 더 촘촘히 연결됐고, 이주민들은 고향을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고국과 타국을 동시에 연결하는 '트랜스내셔널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도 그 흐름이다.

 

다만 이와 같은 현대적 디아스포라는 전통적 디아스포라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이는 박해나 강제이주를 전제로 하지 않으며, 흩어진 공동체가 온라인과 글로벌 교류를 통해 연결되고, 정체성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재구성하는 흐름에 가깝다. 이러한 현상을 일부에서는 '디지털 디아스포라'라고 부르지만, 이는 전통적 디아스포라와는 다른 사회적 맥락과 성격을 지닌 또 다른 형태의 연결망이다.

 

디아스포라는 고향과 타향, 정체성과 변화, 소속감과 이질감 사이에서 인간이 어떻게 균형을 잡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복합적 현상이다. 과거의 역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