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ndrew Mercer(www.baldwhiteguy.co.nz), CC BY-SA 4.0, wikimedai commons.
대중문화 속 익숙한 좀비
좀비(Zombie)는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대중문화 속에서 익숙하게 등장하는 소재다. 대표적으로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 2010)』나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2002)』 같은 작품들을 통해 '살아 있는 시체'라는 개념은 꾸준히 변형되고 확장돼 왔다.
그러나 좀비라는 존재를 단순히 현대 오락을 위한 상상력의 산물로만 볼 수는 없다. 죽은 자가 다시 돌아온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되살아난 시체에 대한 오래된 두려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를 비롯해, 세계 여러 지역의 신화와 종교적 전승 속에는 죽음 이후 다시 돌아오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문화에 따라 이름과 형식은 다르지만, 근본적인 두려움은 비슷하다.
고대 중국에서는 '강시(僵尸)'가 부활해 사람들의 생기를 빼앗는 존재로 묘사됐다. 아라비아 지역에서는 '굴(Ghul)'이 사막을 배회하며 인간을 위협했고, 북유럽 바이킹 전승의 '드라우그(Draugr)' 역시 무덤에서 일어나 산 자를 해치는 죽음의 그림자였다.
이처럼,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죽음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해 왔다.
현실과 민속이 만든 공포의 흔적
중세와 근대 유럽에서는 이런 두려움이 실제 장례풍습에 반영되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신이 무덤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머리를 자르거나 가슴에 말뚝을 박는 일이 있었고, 사지를 묶는 관습도 나타났다. 죽은 자가 다시 돌아온다는 믿음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 사례다.
또한 '토텐바허(Totenwache)', 즉 시신 곁을 지키는 의식도 널리 퍼졌다. 표면적으로는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이지만, 당시 의학적 한계로 인해 사망 판정을 잘못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현실과 연결된다. 살아난 사람이 관 속에서 발견된 사례가 실제로 있었고, 이런 일들이 언데드에 대한 상상과 결합하면서 좀비 개념의 토대가 형성됐다.
좀비라는 이름의 유래
'좀비(Zombie)'라는 단어는 아프리카 킴분두(Kimbundu)어의 ‘느줌베(nzùmbe)’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죽은 자의 영혼을 뜻한다. 17세기 노예무역을 통해 이 단어와 관련 신화가 아이티로 전해졌다. 오늘날에도 아이티에는 '존비(zonbi)'라는 표현이 남아 있다. 일부 학자들은 노예들이 자살을 시도하지 않도록, 자살하면 죽어서도 자유를 얻지 못하고 언데드가 된다는 공포를 의도적으로 퍼뜨렸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또한 아이티의 부두교 전통에서는 사제가 죽은 이를 다시 살린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는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라는 독성 물질을 사용해 사람을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고, 이후 해독제를 투여해 '되살아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때 심각한 신경 손상을 입고 비틀거리며 공허한 눈빛을 던지는 사람의 모습은 현대 좀비의 외형과 상당히 흡사했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과 신화는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으로 전해졌고, 좀비는 영화와 문학을 통해 대중문화 속으로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 좀비의 변형과 확장
1968년, 조지 로메로(George A. Romero) 감독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을 통해 현대 좀비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에서 좀비는 느릿느릿 움직이며 사람을 물어뜯고, 감염을 퍼뜨리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 설정은 이후 수많은 좀비물의 기본 구조가 됐다.
최근에는 좀비의 설정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블랙 섬머(Black Summer, 2019-2021)』에서는 빠르고 공격적인 좀비가 등장하며, 『아미 오브 더 데드(Army of the Dead)』시리즈에서는 일부 좀비가 감정을 느끼고, 복수를 계획하는 등 지능적인 모습까지 그려진다.
죽음과 통제 불안을 비추는 존재
좀비는 단순한 괴물이라기보다, 인간이 죽음과 육체 훼손, 사회 질서 붕괴에 대해 품는 근원적 불안을 투영하는 상징으로 해석된다. 전염병 확산, 사회적 혼란, 인간 통제력 상실이 강조되는 시기에 좀비물이 유독 주목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좀비는 죽음 이후에 대한 상상, 인간성의 상실,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적으로 형상화한 존재다. 그렇기에 좀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되면서도, 인간의 심리 깊숙한 곳을 자극하는 소재로 계속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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