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라일락(Lilac), 봄을 물들이는 향기

Egaldudu 2025. 7. 1. 11:42

프렌치 라일락(Syringa vulgaris), 2012년 5월 5일 촬영.

By Georgina Szabo, CC BY 3.0, wikimedia commons.

향기로 가득한 봄의 절정

라일락(Lilac) 향기가 바람결에 스칠 때면 봄은 이미 한창이다. 햇살이 부드럽게 퍼진 골목길, 어디선가 은은하면서도 선명한 향이 밀려온다. 그 향기는 단숨에 공기를 채우고, 익숙하면서도 아련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한 번쯤, 그 향기에 이끌려 무심코 고개를 돌려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느새 벚꽃은 지고 신록이 짙어지는 사이, 라일락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봄의 중심을 채운다.

 

라일락의 이름과 유래

라일락은 수수꽃다리속(Syringa)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 또는 작은 나무다. Syringa(사이링가 또는 시링가)라는 속명은 그리스어 시링크스(syrinx)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피리' 또는 '관악기'를 뜻한다. 신화 속 님프 '시링크스'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명칭은 라일락 속 식물들의 줄기 일부가 속이 비어 있는 구조를 지닌 데서 비롯됐다. 고대에 실제로 피리나 악기의 재료로 쓰였다는 설도 있으나, 어원적 유래에 더 가깝다.

 

수수꽃다리속의 생태와 다양성

라일락은 모두 암수한그루(자웅동주), 한 그루의 식물에서 수꽃과 암꽃이 함께 피어 열매를 맺는다. 꽃 색깔은 연보라에서 진보라, 흰색, 연분홍까지 다양하며, 일부 원예 품종에서는 푸른빛을 띠는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수수꽃다리속(Syringa)은 전 세계에 약 30여 종이 알려져 있으며, 주로 유럽과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국, 몽골, 히말라야 지역에 분포한다. 우리가 도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라일락은 원예 품종으로,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약 2,000여 종 이상의 라일락 원예 품종이 육성됐다.

 

도심에서 만나는 라일락들

우리나라 도시에서 보이는 라일락의 종류는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가장 널리 볼 수 있는 것은 흔히 프렌치 라일락(Syringa vulgaris)이라 불리는 대형 품종이다. 키는 3~6m까지 자라며, 굵직한 꽃차례와 강렬한 향기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학교 운동장, 공원, 오래된 주택가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한편, 공간 제약이나 관리 편의성을 고려해 키가 작은 품종들도 도심 곳곳에 심겨 왔다. 대표적으로 팔리빈 라일락(Syringa meyeri 'Palibin')과 미스김 라일락(Syringa pubescens subsp. patula 'Miss Kim')이 있다. 미스김 라일락은 한국 북부 자생종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육성된 품종으로, 특히 그 이름 덕분에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미스김 라일락, 이름과 관련하여

미스김 라일락, 미시간 남동부 개인 정원. 식재(2012년) 후 8년 지난 모습

By F. D. Richards from Clinto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1947, 한국에 주둔 중이던 미군 농학자 엘윈 미더(Elwin M. Meader)는 북한산 일대에서 자생하는 털개회나무의 종자를 채집했다. 이 종자는 미국으로 건너가 내한성과 관리성을 높여, 새로운 라일락 품종으로 개량되었다. 이때 붙은 'Miss Kim'이라는 이름은 한국을 상징하거나 종자 채집에 도움을 준 한국계 인물을 기리는 의미로 전해진다.

 

미스김 라일락은 약 1.5~2.5m 정도로 비교적 낮게 자라며, 추위와 병충해에 강하다. 특히 겨울이 긴 지역에서도 안정적으로 생육해 미국 북부와 캐나다 등지에서 조경용으로 널리 활용된다. 개화 시기는 비교적 늦어 5월 중·하순까지 라일락 특유의 향기를 오래 즐길 수 있다. 꽃은 연보라빛 봉오리에서 점차 흰색으로 변해간다.

 

향기로 물드는 일상

도시 한복판에서 라일락을 마주하는 일은 단순히 꽃을 보는 것을 넘어, 오감으로 계절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연보랏빛 꽃이 피어나고, 특유의 짙은 향기가 바람을 타고 퍼질 때,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자연의 작은 축제를 누릴 수 있다.

 

라일락이 피는 계절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그 향기를 더 오래 곁에 두고 싶어한다. 하지만 봄의 끝자락이 다가오면 그 향기도 천천히 멀어지고, 봄은 또 그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