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겨울 숲을 푸르게 지키는 상록수, 그 생존 전략

Egaldudu 2025. 8. 12. 21:40

눈 속에서도 잎을 간직한 상록수 숲 (출처: 픽사베이)

 

겨울에도 푸른 상록수

겨울이 오면 숲의 표정이 바뀐다. 단풍나무와 참나무 같은 낙엽수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뻗는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여전히 푸른빛을 잃지 않는 나무들이 있다. 이들은 소나무, 전나무, 호랑가시나무 같은 상록수들이다. 눈 덮인 한겨울에도 이들이 잎을 간직한 채 푸르게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낙엽수와 상록수, 서로 다른 겨울 나기

겨울은 식물에게 혹독한 시기다. 낮이 짧아지고 햇빛이 약해져 광합성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고, 토양의 수분이 얼어 뿌리가 물을 흡수하기 어려워진다.

 

낙엽수의 잎은 얇고 넓어 표면적이 크기 때문에 수분 증발이 빠르고, 눈이나 찬 바람에 쉽게 손상된다. 이런 잎을 계속 유지하는 건 에너지만 낭비하는 셈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엽록소를 분해해 영양분을 줄기와 뿌리에 저장하고 잎을 떨어뜨려 겨울을 난다.

 

그러나 상록수는 다른 길을 택했다. 잎을 버리지 않고 지키되, 혹독한 환경을 견디도록 잎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겨울을 견디는 잎의 구조와 기능

상록수의 바늘잎(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과 두꺼운 잎(호랑가시나무, 동백나무, 월계수 등)은 단순한 형태 차이가 아니다. 바늘잎은 표면적이 작아 수분 손실을 최소화하고, 잎살이 단단해 눈이나 바람에도 잘 손상되지 않는다.

 

표면을 덮는 두꺼운 큐티클층과 왁스 코팅은 마치 방수막처럼 수분을 가두고, 차가운 바람과 건조한 공기를 막는다.  이 층은 동시에 미생물과 곰팡이 같은 병원체의 침입도 줄인다. 기공(잎의 숨구멍)은 잎 표면 깊숙이 자리해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겨울철 건조한 공기 속에서도 수분 손실을 크게 줄인다.

 

서리가 내려앉은 호랑가시나무 잎 (출처: 픽사베이)

 

호랑가시나무(Ilex aquifolium)처럼 넓은 잎을 가진 상록수도 비슷한 전략을 쓴다. 잎 표면의 광택은 사실 왁스층이 빛을 반사하는 것이며, 잎살 자체가 두꺼워 수분을 오랫동안 보존한다.

 

겨울에도 살아 있는 광합성 공장

엽록소가 살아 있는 한, 상록수의 잎은 빛을 받으면 광합성을 이어간다. 다만 기온이 0℃ 이하로 내려가면 광합성 효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겨울에도 낮 동안 기온이 오르고 토양에서 물을 흡수할 수 있으면, 느리지만 꾸준히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 덕분에 상록수는 겨울에도 기초적인 생명활동을 유지하며, 봄이 오자마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낙엽수는 봄에 새 잎을 만들고 광합성을 시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상록수는 이미 준비된 잎으로 즉시 광합성을 극대화한다.

 

영원한 잎은 없다

상록수의 잎이 영구적으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종에 따라 2~5년 주기로 낡은 잎이 떨어지고 새로운 잎이 자란다. 그러나 한꺼번에 모든 잎을 교체하지 않고, 매년 일부씩 서서히 바꾸기 때문에 겨울에도 나무 전체가 푸르게 보인다.

 

겨울 숲의 메시지

상록수의 푸르름은 단순한 강인함이 아니라, 수백만 년 동안 다듬어진 생존 전략이다. 혹독한 계절에 대처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이들은 잎을 버리지 않고 지키면서 적응하는 길을 택했다. 덕분에 우리는 한겨울에도 초록빛 숲을 거닐 수 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우리에게도 작은 시사점을 준다. 버리는 것이 꼭 해답은 아니다. 미약하나마 잘 지키고 관리하는 것도 생존의 지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