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lex Popovkin, Bahia, Brazil, CC BY 2.0, wikimedia commons.
목차
1. 죽은 듯 멈추는 순간
2. 몸속에서 일어나는 변화
3. 포식자 회피 전략
4. 상어의 경우: 유도된 강직성 부동성
5. 짝짓기의 무대에서도
6. 사냥과 사회적 갈등까지
7. 죽음 흉내의 의미
죽은 듯 멈추는 순간
어떤 동물들은 위협을 받으면 도망치지도, 싸우지도 않고 오히려 완전히 멈춰버리는 선택을 한다. 몸은 뻣뻣하게 굳고 근육은 긴장한 채 움직임이 사라진다. 이 상태를 과학에서는 강직성 부동성(또는 긴장성 부동성, tonic immobility)이라 부른다. 외부 자극에 거의 반응하지 않지만 실제로 죽은 것은 아니다. 곤충에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관찰되는 이 현상은, 생존 전략으로 진화해온 자연의 독특한 장치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변화
강직성 부동성에 들어간 동물은 심박수와 호흡이 달라지고, 일부 종은 사지가 움직인 자세 그대로 굳는 카탈렙시(catalepsy)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곤충은 복부의 호흡 운동이 크게 줄지만 심장은 오히려 빨라지고, 척추동물은 호흡과 맥박이 느려지며 침이나 배설이 동반되기도 한다. 외부에서는 죽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변을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반응은 단순한 ‘쇼크’가 아니라 신경계가 만든 정교한 반사다. 곤충에서는 굴근·신근 운동 뉴런과 신경절이, 척추동물에서는 부교감 신경계가 주요 역할을 한다. 또한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부동성 상태의 지속 시간을 조절하며, 개체의 나이·체격·번식 경험, 계절과 온도 같은 요인도 반응의 길이와 강도를 바꾼다.
포식자에게 맞서는 마지막 카드
강직성 부동성은 무엇보다 포식자 회피전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버지니아 주머니쥐는 부패한 사체 냄새 같은 악취를 풍겨 포식자를 물러서게 하고, 난쟁이메뚜기는 몸을 뻣뻣하게 만들면 드러나는 가시로 개구리가 삼키기 어렵게 만든다.
먹잇감이 움직이지 않으면 포식자는 확인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이는 다른 먹이를 쫓을 기회를 줄인다. 결국 죽은 척하는 먹잇감의 ‘매력’은 떨어지고, 생존 확률은 높아진다.
상어의 경우, 유도된 강직성 부동성
By Mozcashew1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상어의 경우는 특이하게 몸이 거꾸로 뒤집힐 때 강직성 부동성이 나타난다. 레몬상어, 산호초상어, 호랑이상어 등에서 확인된 이 현상은 호흡과 근육이 이완되고 등지느러미가 곧게 펴지는 특징을 보이며, 작은 수술의 마취 대용으로도 활용될 만큼 안정적이다.
범고래는 이를 이용해 상어를 뒤집은 뒤 무력화시키고 쉽게 사냥한다. 학자들은 이 반응을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보기도 하고, 일부 종에서는 교미 의식과 관련된 본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특정한 ‘마사지’ 자극만으로도 유발되는 경우가 관찰된다.
짝짓기의 무대에서도
흥미롭게도 이 전략은 생존뿐 아니라 번식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수컷 유럽거미는 암컷에게 곤충을 바치고 교미를 시도하다가 공격 신호를 감지하면 죽은 듯 굳어버린다. 암컷이 다시 먹이에 몰두하면 교미를 이어간다. 반대로 일부 곤충 암컷은 원치 않는 수컷의 접근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강직성 부동성에 들어간다.
사냥과 사회적 갈등까지
강직성 부동성은 심지어 사냥 전략으로도 쓰인다. 시클리드나 그루퍼 같은 포식성 어류는 바닥에 늘어진 듯 죽은 척하며 작은 물고기를 유인한다. 사회성 곤충에게서는 집단 내 갈등을 피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붉은불개미 유충이나 무침벌의 여왕벌들은 일개미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굳히고 움직이지 않는다.
By Oast House Archive,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죽음 흉내의 의미
강직성 부동성은 ‘죽은 척하기(thanatosis, death feigning)’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다윈이 주목했던 이 행동은 단순한 흉내일까, 아니면 진화가 선택한 정교한 전략일까? 모든 동물이 의도적으로 이 상태에 들어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 반응이 종마다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며 때로는 생존, 때로는 번식, 때로는 사냥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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