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비둘기에 관한 세 가지 특별한 이야기

Egaldudu 2025. 9. 9. 14:44

서론

도시의 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흔한 새로 여겨진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속에서 비둘기는 단순한 길거리 동물이 아니라, 소통과 전쟁, 심지어 첩보 활동까지 맡아온 특별한 존재였다. 몸집은 작지만, 비둘기는 특유의 귀소 본능과 적응력을 바탕으로 인간 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왔다.

 

1. 하늘의 우편배달부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비둘기를 이용한 통신의 역사는 놀랍게도 기원전 약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이미 비둘기를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사용했으며, 로마 제국과 중세 유럽에서도 이 전통은 이어졌다. 비밀은 바로 귀소 본능에 있었다. 목적지에서 길러진 비둘기를 다른 지역에서 풀어주면, 비둘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본래의 집으로 되돌아왔다.

 

이 능력은 상인들에게 특히 유용했다. 긴 항해를 떠난 상선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비둘기를 풀어 거래 소식을 본국으로 전했다. 심지어 19세기 유럽의 금융가들도 주가 변동 소식을 빠르게 알리기 위해 비둘기를 사용했다. 스마트폰은커녕 전신조차 없던 시절, 하늘을 나는 비둘기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메신저였던 셈이다.

 

2. 전쟁 영웅

프랑스 전선, 영국 전차의 측면 포트홀로 전령 비둘기가 방출되는 장면 (1918년)

By David McLellan,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비둘기는 전쟁터에서도 빛을 발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연합군의 비둘기 셰르 아미(Cher Ami)이다. 이 새는 12차례 이상의 임무를 수행했고, 마지막 비행에서는 총알에 맞아 한쪽 다리를 잃었음에도 끝내 메시지를 전달해 200명 이상의 병사를 구했다. 이 공로로 훈장을 받은 셰르 아미는 지금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박제된 채 전시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은 1938년에 창설된 국가 비둘기 서비스(National Pigeon Service, NPS)를 통해 20만 마리 이상의 비둘기를 군에 제공했다. 이들은 왕립공군, 육군, 그리고 정보부대에서 활용되었으며, 전쟁 기간 동안 16,554마리가 낙하산을 통해 유럽 대륙에 투입되었다. 그중 붉은 얼룩 무늬 수컷커맨도(Commando)’는 임무 수행 공로로 디킨 메달(Dickin Medal)을 받았고, 여러 비둘기들이 같은 훈장을 수여받았다.

 

3. 하늘의 사진기자

노이브로너가 고안한 카메라 부착된 비둘기

By Pigeoncameras.jpg,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비둘기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07년 독일 발명가 유리우스 노이브로너(Julius Neubronner)는 비둘기에 소형 자동 카메라를 장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무게는 약 70g에 불과했으며, 셔터는 30초에서 2분 간격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이 실험은 큰 반향을 일으켜, 1909년 드레스덴 국제사진전에서는 비둘기가 찍은 항공사진이 전시되기도 했다. 이후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에 비둘기 사진술은 군사 첩보 활동으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드론이나 위성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적진 상공을 자유롭게 나는 비둘기는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완벽한 정찰병이었다. 하늘을 나는 작은 새가 곧날아다니는 카메라였던 셈이다.

 

결론

비둘기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도심 광장에 모여드는 회색 무리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인류의 역사와 깊이 얽힌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귀소 본능을 활용한 우편배달부, 목숨을 걸고 메시지를 전한 전쟁 영웅, 그리고 첩보 작전에 동원된 하늘의 사진기자까지.

 

오늘날 비둘기는 더 이상 통신이나 전쟁의 수단으로 쓰이지 않지만, 그들과 얽힌 역사적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