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이 밝혀낸 ‘조용한 생명’의 감각 —

1. 서론: 오래된 믿음의 배경
물고기는 얼굴을 찡그리지도, 울음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동물이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고통을 드러나는 표정과 소리를 기준으로 판단해 온 인간의 관점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은 이 오래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2. 통증의 기초 ᅳ 통각수용기
통증 연구의 출발점은 통각수용기(nociceptor)의 존재이다. 통각수용기는 조직이 손상되거나 위험 자극이 발생했을 때 이를 감지하는 신경 구조다. 어류에도 이런 수용기가 분포한다는 사실이 해부·생리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즉, 물고기 역시 유해 자극을 감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신경체계를 가지고 있다.
3. 행동 실험이 보여준 반응
어류의 통증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다.
- 대표적인 실험에서는 무지개송어의 입에 아세트산이나 벌독 등을 주입했을 때
환기율(호흡 빈도) 증가, 이상 행동, 먹이 활동의 감소가 나타났다. - 반대로 진통제를 투여하면 이런 행동 변화가 완화되었다.
이런 점은 단순 반사 이상의 ‘고통에 대한 반응’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4. 기억과 회피 행동
열 자극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일부 물고기에게 진통제를 투여하고 따뜻해지는 물에 노출시키면, 진통제를 투여하지 않은 개체들이 회피 행동이나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다
이후 모든 물고기를 진통제 없이 다시 서서히 가열되는 물에 넣자, 이전에 진통제 없이 열 자극을 경험했던 물고기들은 처음부터 회피 행동을 보였다. 이는 이전의 유해 자극에 대한 학습 또는 기억 과정이 작동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5. 쟁점: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의 차이
다만, 물고기가 인간과 같은 형태의 고통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 통증은 단순한 자극 감지가 아니라 정서적 경험을 포함하는데, 어류의 뇌 구조는 포유류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행동과 생리 반응은 고통의 증거다”라는 입장과 “통각 반응일 뿐, 정서적 고통은 아닐 수 있다”는 입장 사이에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6. 결론: 통증은 있으나 성질은 불확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하면, 물고기는 유해 자극을 감지하고 회피하며, 진통제에 반응할 뿐 아니라 과거의 고통을 기억했을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이 모든 점은 물고기가 통증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지지한다. 다만 인간이 경험하는 정서적 고통과 동일한 성질인지는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다.
물고기라는 종이 가진 조용한 침묵을 인간의 기준으로 오해하는 대신,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생리 신호를 통해 조금 더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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