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죽음을 애도하는 동물들: 집단 기억과 사회적 유대

Egaldudu 2025. 3. 18. 14:49

 

지난 3 14, 영국 데일리메일은 코끼리의 애도 행동을 포착한 기사를 보도했다. 25년 동안 함께한 인도 코끼리제니가 사망하자 동료 코끼리막다는 몇 시간 동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수의사가 접근을 시도했으나, 막다는 이를 저지하며 죽은 동료 곁을 지켰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본능적 반응이 아니라 코끼리 사회에서 공유되는 기억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Moment retired circus elephant mourns its long-time performing partner

The pair Jenny and Magda had been inseparable for more than a quarter of a century and retired four years ago. They have since roamed the Taigan Safari Park in Russian-occupied Crimea

www.dailymail.co.uk

 

막다의 행동은 개별적인 반응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야생에서 코끼리는 무리 내에서 죽음이 발생할 경우 여러 개체가 유사한 애도 행동을 보이는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 두 개체만 함께 있었던 환경에서는 개별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연 속에서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면 이는 단순한 개체의 반응이 아니라 사회적 행동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관점에서 막다의 행동은 집단적 기억의 일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 저장이 아니다

기억은 단순히 개인의 경험을 저장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고 확장되는 개념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기억이 개별적인 차원을 넘어, 집단적으로 공유되면서 역사와 문화가 형성된다. 독일의 문화학자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은 이러한 개념을 ‘기억 공간(Erinnerungsräume)’이라 명명하며, 특정한 장소, 기념물, 의례를 통해 기억이 전승된다고 설명했다.

 

기억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으로 가공되며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전쟁기념관이나 국가적 추모의식은 특정한 사건을 기억하고 공유하도록 설계된 기억 공간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개념이 동물 사회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면, 이는 동물도 단순한 개체 수준의 기억이 아닌,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기억 구조를 가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코끼리: 공간 속에 남은 기억

아프리카의 여러 국립공원에서 관찰된 바에 따르면, 코끼리는 죽은 동료의 뼈를 코로 살피거나, 과거에 머물렀던 장소를 다시 방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특정 장소에서의 경험을 오랫동안 기억하며, 죽음이 있었던 장소를 찾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기억이 저장되고 유지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행동은 인간이 기념비나 역사적 장소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까마귀: 죽음을 학습하는 조류

까마귀는 높은 지능을 가진 조류로, 다양한 연구에서 그 학습 능력이 확인되었다. 워싱턴 대학의 카엘리 스위프트 연구팀은 까마귀가 동료가 사망한 장소를 기억하고, 이후 그 지역을 회피하거나 경계하는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2011년에 보고된 다른 연구에 따르면 실험 결과, 까마귀는 위협을 가한 인간의 얼굴을 학습하고, 이 정보를 무리 내에서 공유하는 능력까지 갖고 있었다. , 단순히 개별 개체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학습하고 전파하는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기억의 기초가 되며, 까마귀 무리 내에서도 기억 공간이 형성될 개연성을 보여준다.

 

돌고래: 사회적 애도와 기억의 공유

미국 비영리단체 고래연구센터(Center for Whale Research, CWR)는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죽은 새끼를 17일 동안 이동하며 품고 다닌 한 어미 범고래에 대해 보고한 적이 있다. 이와 유사하게, 다른 범고래들도 죽은 새끼와 함께하는 행동을 보이며, 때로는 같은 무리의 다른 개체들이 곁에서 함께 헤엄치며 어미와 새끼를 둘러싸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동이 단순한 어미의 본능적인 반응을 넘어, 범고래 사회에서 공유되는 애도의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범고래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동물로, 개체 간 유대가 강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간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러한 행동이 지속적으로 관찰된다면, 단순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기억과 감정이 무리 내에서 전승되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동물의 기억 공간과 문화적 기억

알라이다 아스만의기억 공간개념은 동물 세계에서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인간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비나 문서를 통해 기억하는 것처럼, 동물들도 특정한 장소나 행동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공유한다.

 

코끼리가 죽은 동료의 뼈를 만지는 행동, 까마귀가 위협 요소를 학습하고 경계하는 방식, 돌고래가 집단적으로 애도하는 행동은 모두 개체의 기억을 넘어선 집단적 기억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동물들도 사회적으로 공유된 기억을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결론: 기억은 사회적 현상이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 저장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속에서 공유되고 유지되는 현상이다. 인간의 기억이 공간과 문화를 통해 보존되는 것처럼, 동물들도 특정한 방식으로 기억을 전달하고 공유할 가능성이 크다. 코끼리, 까마귀, 돌고래의 사례를 통해 볼 때, 집단 기억은 인간만의 특성이 아닐 수 있다. 향후 연구를 통해 동물의 문화적 기억과 사회적 유대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