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마태복음 17장 27절)
전설 속 물고기
물 위에 선 베드로는 깊은 수면을 바라보았다. 물결은 조용히 일렁였고, 그의 손에는 낡은 어망이 들려 있었다. 그가 예수의 말씀대로 낚싯줄을 던지자, 놀랍게도 물고기 한 마리가 걸려들었다. 물고기의 입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은화 한 닢이 들어 있었다. 베드로는 그 돈을 성전세로 바쳤고, 이때 잡은 물고기가 바로 오늘날 ‘성 베드로의 물고기’라 불리는 달고기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달고기의 몸에는 선명한 검은 반점이 있다. 이 반점은 베드로가 물고기를 손으로 움켜쥘 때 생긴 손자국이라는 이야기가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내려왔다. 유럽에서는 이 물고기를 ‘Peter's fish(베드로의 물고기)’라 부르며, 그 기이한 외형과 전설을 함께 기억하고 있다.
청어의 왕, 사냥꾼의 모습
그러나 전설과 달리, 이 물고기는 신비로운 존재라기보다는 날렵한 사냥꾼에 가깝다. 독일에서는 이 물고기를 ‘청어왕(Heringskönig)’이라고 부른다. 청어 떼나 정어리 무리 근처에서 자주 발견되며, 그 덩치와 위엄 있는 모습 때문에 마치 작은 물고기들을 지배하는 왕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그는 청어의 왕이 아니라 청어를 사냥하는 포식자다.
달고기는 평소 바닷속 바닥에 머물며 움직임이 적지만, 사냥을 할 때는 눈부신 속도로 움직인다. 몸을 최대한 낮춘 채 접근하다가, 먹이가 가까워지는 순간 긴 턱을 불쑥 내밀어 순식간에 삼켜 버린다. 주로 청어, 정어리, 갑각류를 먹으며, 때때로 오징어나 작은 문어도 잡아먹는다.
이름 속에 담긴 의미
이 물고기는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John Dory’라고 불린다. 이 명칭은 프랑스어 dorée(황금빛)에서 유래했으며, 햇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그의 몸빛과 관련이 깊다. 일본에서는 ‘마토우다이(マトウダイ)’라 불리는데, 이는 ‘과녁 도미’라는 뜻이다. 몸 중앙의 검은 점이 활 과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달고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일반적으로 흔하게 유통되는 생선은 아니지만, 고급 일식당이나 특정 시장에서 판매되며, 점차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주로 제주도와 남해안에서 잡히며, 경상도에서는 ‘허너구’라고 불린다.
식탁 위의 달고기
달고기는 감칠맛이 뛰어난 흰살 생선으로, 서양에서는 고급 식재료로 취급된다. 그의 살에는 글루탐산 비율이 높아 자연스럽게 감칠맛이 강하며, 기름기가 적어 깔끔한 맛을 낸다. 특히 유럽에서는 찜, 구이, 스테이크 요리로 많이 사용되며, 영국의 유명 셰프 고든 램지가 애정하는 생선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에서도 달고기는 점차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로 등장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며, 제주도와 남해안에서 구이나 조림 요리로 즐기고 있다. 다만 머리가 크고 내장이 많아 수율이 낮다는 점 때문에 대중적으로 널리 소비되지는 않는다.
전설과 현실이 공존하는 물고기
한 마리의 물고기가 성경 속 이야기에서 시작해 청어왕, 황금빛 몸을 지닌 사냥꾼, 과녁 도미, 그리고 한국의 달고기로 불리며 각 나라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바다 속에서 유유히 떠다니며 사냥을 준비하는 모습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는 신비로운 전설을 품은 존재이자, 바닷속의 민첩한 포식자이며, 동시에 인간에게 귀한 식재료로 사랑받는 물고기다. 달고기, 그 이름 속에는 오래된 이야기와 자연의 생태가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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