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자라는 뿔, 매년 반복되는 채취
사슴뿔은 매년 자란다. 봄이면 연골이 솟고, 여름이면 단단한 뼈가 되며, 가을이면 떨어진다. 이 자라나는 시기의 뿔을 잘라 피를 모으는 장면은 특정 약효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정력에 좋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뿔의 성분은 손톱과 다르지 않다. 둘 다 케라틴 단백질이다. 같은 성분이라면 손톱을 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피는 병에 담기고, 뿔은 약재가 된다. 이 소비는 ‘효능’이 아니라 믿음과 상징을 섭취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곰 ‒ 고통의 순환이 만들어낸 산업
곰의 쓸개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채취되고 있다. 살아 있는 곰의 복부에 관을 꽂아 매일 또는 주기적으로 쓸개즙을 뽑아낸다. 곰은 철창 안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수년을 버티며 죽어간다.
그리고 ‘웅담’이라 불리는 이 즙에는 열을 내리고 간을 보호하며 정력에 좋다는 설명이 첨부된다. 주성분인 UDCA는 이미 합성으로 대체 가능하지만 전통은 화학보다 설득력이 강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약리 효과가 아니라 곰의 고통을 지속시키는 상징적 소비 구조다.
호랑이 ‒ 죽은 힘을 삶에 끌어들이는 방식
호랑이는 국제적으로 거래가 금지된 보호종이다. 그럼에도 일부 시장에서는 여전히 호랑이 뼈로 만든 술, 이른바 ‘호골주(虎骨酒)’가 팔린다. 뼈를 달여 마시면 기운이 솟고, 관절이 풀리고, 남성성이 회복된다고 여겨진다.
호랑이 뼈 역시 칼슘과 콜라겐 덩어리다. 의학적 효능은 입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맹수의 기운을 마신다는 그 상징을 소비한다. 한 잔의 술은 실제로는 뼈보다 이야기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말 ‒ 생식기를 삶는 남성성의 환상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말의 생식기나 고환을 삶아 먹는 전통이 남아 있다. ‘말처럼 강해진다’는 믿음이다. 기름기 있는 육질에 허브를 넣고 오래 끓이면 남성의 기운이 되살아난다는 식이다.
이것은 신체의 일부를 섭취하여 그 생물의 속성을 흡수하려는 고전적 사고방식이다. 먹으면 말이 되는 건 아니지만, 먹음으로써 그 이미지에 자신을 겹쳐보는 심리는 확실히 작동하는 거 같다.
코뿔소 ‒ 정력보다 경제력의 상징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코뿔소 뿔은 예멘에서 전통 단도 ‘잔비야(Jambiya)’의 손잡이 재료로 사용된다. 이 단도는 남성의 명예, 권위, 경제력을 상징하며, 코뿔소 뿔은 그 핵심 장식이다.
1994년부터 1996년 사이, 전면적인 거래금지에도 불구하고 매년 50~100kg의 뿔이 예멘으로 밀수되었다. 1kg에 수천만 원이 오가는 시장이었다. 이곳에서 코뿔소 뿔은 정력제가 아니라 희귀성과 자본력의 상징으로 작동했다.
먹는 건 몸이 아니라 믿음이다
정력제는 의약의 이름으로 팔리지만, 그 실체는 불안, 경쟁, 위신, 자기회복에 대한 집단적 상징 소비다. 실질적인 효능보다 믿을 수 있는 이야기 하나가 더 잘 팔린다.
사슴뿔 피든, 곰의 쓸개든, 호랑이의 뼈든, 말의 생식기든 그 안에는 언제나 한 생명의 신체와, 한 사회의 욕망이 겹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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