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만 본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개들이 눈 오는 날 유독 들뜬 모습을 보일 때 예전에는 그것을 흔히 개의 제한된 시각으로 설명하곤 했다. 나 역시 누구한테 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몇 해 전까지만해도 생각없이 개는 흑백으로 세상을 본다고 믿고 있었다. 눈 올 떼 마당에서 이리 저리 껑충껑충 뛰는 개를 보면 굳이 그걸 의심할 이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현대 과학에 따르면 잘못된 설명이다.
개의 시각은 인간과 다르다
사람이나 개 모두, 눈 속에 간상세포와 원추세포라는 두 가지 광수용체(光受容體)를 가지고 있다. 간상세포는 어두움과 밝음을 구분하는 기능을 하며, 원추세포는 색을 인식한다. 사람의 경우, 세 종류의 원추세포를 갖고 있어 빨강, 초록, 파랑 빛을 구분할 수 있다.
반면 개는 두 종류의 원추세포만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개는 노랑과 파랑 계열의 색은 어느 정도 인식하지만, 빨강이나 초록은 거의 회색이나 갈색처럼 보인다. 이러한 시각 체계를 이색성 시각(dichromatic vision)이라고 한다. 즉, 개도 색을 보긴 하지만 그 범위는 인간보다 훨씬 좁다.
어두울수록 개가 더 잘 본다
색을 구분하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개는 간상세포가 많아서 어두운 환경에서 더 뛰어난 시력을 발휘한다. 간상세포는 빛이 적어도 작동하기 때문에, 개는 야간이나 흐린 날씨에도 물체를 비교적 잘 볼 수 있다. 반면 사람은 원추세포의 비율이 높아 밝은 환경에서는 유리하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시야 확보가 어렵다.
이처럼 개는 색상 구별에는 제한이 있지만, 밝기나 움직임, 명암 대비를 감지하는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이 구조는 사냥 본능을 지닌 동물에게 적합한 감각 체계다.
눈 오는 날, 왜 그렇게 신이 날까
그렇다면 개는 왜 눈 오는 날 그렇게 들뜬 행동을 할까? 물론 흑백 대비가 더 도드라져 보여서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눈이라는 환경 변화가 주는 감각적 자극 때문이다.
눈이 내리면 주변의 냄새가 눈으로 덮이고, 땅의 질감도 달라진다. 발바닥에 미끄럽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눈은 개에게 색다른 촉각 경험을 준다. 공기는 차고, 빛은 눈에 반사되어 평소보다 훨씬 밝게 퍼진다. 이처럼 평소와는 다른 시각·후각·촉각 자극이 동시에 찾아오는 상황은 개에게 ‘새로운 세계’와 같다.
낯설고 흥미로운 환경은 개의 탐색본능을 자극한다. 익숙했던 공간이 눈 덮인 들판이 되면 그 자체로 하나의 놀이터가 된다.
감성적 오해, 과학적 이해
개는 흑백으로만 세상을 보기 때문에 눈을 좋아한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개는 색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으며, 특히 어두운 환경에서 뛰어난 시각 능력을 발휘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눈 오는 날 개가 들뜨는 진짜 이유는 시각 자체보다는 감각 전반이 바뀌는 환경 변화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잘 보여서 그런가 보다’라고 여겼던 행동은 사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정교한 감각 반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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