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돌고래는 왜 집단으로 좌초할까?

Egaldudu 2025. 5. 22. 21:49

1902년, 케이프 코드 해안에서 발생한 파일럿 웨일(흑 돌고래)의 집단 좌초

By National Oceanic & Atmospheric Adminstration (NOAA), Public Domain

 

'병든 리더 이론' 가설

간혹 뉴스에 등장하는 해변의 장면은 한눈에도 이상하다. 건강해 보이는 돌고래 수십 마리가 얕은 물가에 몰려 움직이지 못한 채 발견된다. 구조대가 투입되지만 끝내 많은 개체가 생명을 잃는다. 이처럼 돌고래의 집단 좌초는 단일한 이유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이고 반복적인 현상이다.

 

이 현상은 뉴질랜드, 스코틀랜드, 미국 동부 해안 등지에서 꾸준히 보고되고 있으며, 특히 파일럿 웨일(pilot whale)이나 롱핀드 커먼 돌고래(common dolphin) 같이 사회성이 강한 종에서 자주 발생한다. 몇몇 경우에는 무리가 여러 번 해안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구조 후에도 다시 좌초하는 행동은 이들의 이동이 개별 의사결정이 아닌 집단 의존적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집단적 행동의 원인을 둘러싼 여러 가설 중 하나가 바로병든 리더 이론(Sick-leader theory)’이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에서 리더 개체의 상태가 전체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리더의 상태, 무리의 방향

돌고래는 방향감각이 뛰어나지만, 무리 전체가 잘못된 경로를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 이는 경험 많은 개체를 중심으로 이동하는 습성과 관련이 있다. 리더 역할을 하는 개체가 노화나 질병으로 판단능력이 저하된 경우, 그 영향을 받은 무리가 얕은 해안으로 진입해 좌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도 있다. 최근 European Journal of Neuroscienc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스코틀랜드 해안에 좌초된 돌고래 개체들 중 일부의 뇌에서 신경섬유의 손상, 베타 아밀로이드 침착, 타우 단백질 축적 등 인간의 알츠하이머병에서 관찰되는 소견과 유사한 병리학적 변화가 확인되었다. 해당 연구는 이와 같은 뇌 변화가 일부 개체의 공간 인지 기능과 방향 판단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여러 요인 중 하나로

모든 집단 좌초가 이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수온, 조류, 해저 지형, 자력 이상, 수중 음파 등 다양한 환경 요인이 함께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군사훈련이나 음향탐지기 사용 이후 좌초가 발생한 사례들도 보고되어 왔다.

 

병든 리더 이론은 이 가운데 사회적 구조의 한 요소로 검토되는 설명이며, 개체 간 신뢰와 추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는 데 의미가 있다. 특정 개체가 가진 경험치나 나이, 역할이 무리의 의사결정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관찰이 바꿀 수 있는 것

좌초현장에서 리더 개체의 행동이나 건강상태를 살펴보는 방식은 향후 연구와 구조 대응에 참고가 될 수 있다. 이미 일부 구조현장에서는 개체 간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행동 중심축에 해당하는 개체를 식별하고 있다. 그 개체가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무리 전체의 동선이 어긋날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

 

병든 리더 이론은 아직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은 아니지만, 무리 내의 상호작용과 정보 전달 구조를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참고: Vacher et al. (2022). Alzheimer's disease-like neuropathology in three species of oceanic dolphin, European Journal of Neuroscience.

https://doi.org/10.1111/ejn.15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