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버넌스는 조직이나 사회가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권한과 책임을 배분하는지를 설명하는 구조적 개념이다.
의사결정의 구조, 권한의 흐름, 책임의 설계
‘거버넌스(governance)’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집단과 조직, 국가와 국제 질서에 숨어 있는 구조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단순한 운영방식이나 관리기술이 아니다. 누가 결정권을 가지는가, 그 결정은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며,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귀결되는가 등,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체계적 대답이 바로 거버넌스다.
이 용어는 ‘정부(government)’와 종종 혼용되지만 정확히 구별해야 한다. 정부는 권력을 가진 주체를 가리키는 말인 반면 거버넌스는 그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정부는 ‘누가’이고, 거버넌스는 ‘어떻게’이다.
거버넌스의 핵심은 ‘과정’이다
정치체제든 기업조직이든, 그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은 결코 단선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법률과 규정, 조직구조, 이해관계자의 역할, 자원배분, 감시와 피드백의 절차, 이 모든 것이 바로 거버넌스다. 따라서 거버넌스는 하나의 고정된 시스템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성되고 실행되며 평가되는 역동적 구조다.
이 과정은 단지 기술적 ‘효율성’이나 행정적 ‘신속성’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어떤 의사결정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것이 얼마나 포괄적으로 구성되었는가, 얼마나 명료하게 책임이 설정되어 있는가, 그리고 결과가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납득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거버넌스는 통치방식이자 사회적 신뢰의 설계방식이다.

왜 거버넌스는 오늘날 더욱 중요해졌는가
20세기 중반까지는 대부분의 국가와 조직이 위계적이고 중앙집중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권한은 정점에 모였고, 결정은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세계화와 정보기술의 발달은 단일한 주체가 모든 것을 조율하고 책임지는 모델의 한계를 빠르게 드러냈다.
오늘날의 문제들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기후변화, 팬데믹, 데이터 규제, 도시계획, 기업윤리 문제까지, 이 모든 영역은 국가와 민간,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이 상호작용하는 구조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처럼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하고 상호 견제하면서 공동의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방식, 그것이 현대적 의미의 거버넌스다.
통제의 기술이 아니라 신뢰의 구조
거버넌스를 단지 권한 배분의 기술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좁은 시야다. 진정한 의미의 거버넌스는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뿐 아니라, 정당성을 축적하고 책임을 추적하는 방식 전체를 포괄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권력은 늘 가시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때로는 알고리즘, 제도 설계, 규범과 인식 속에 숨겨진 형태로 작동한다.
따라서 좋은 거버넌스란 통제가 잘 작동하는 체계가 아니라 투명성과 참여, 책임성이 작동하는 신뢰 가능한 구조다. 결국 사회는 효율보다 정당성 위에 서 있을 때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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