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용어들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비싸야 팔리는 이유, 그리고 그 그림자

Egaldudu 2025. 6. 5. 11:04

 

1.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소비의 역설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줄어든다. 이것이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법칙이 통하지 않는 상품들이 있다. 가격이 비쌀수록 오히려 더 잘 팔리는 상품, 비싸기 때문에 사는 소비자가 존재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고 부른다.

 

베블런 효과는 단순한 고가소비가 아니라, 가격 자체가 구매 동기이자 사회적 신호가 되는 현상을 뜻한다. 제품이 가진 기능이나 품질보다는 그 제품을 소유했다는 사실 자체가 지위를 보여주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고급 시계, 명품 패션, 슈퍼카, 희소한 한정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2. ‘과시적 소비에서 출발한 개념

베블런 효과라는 말은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는 1899년 저서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베블런은 산업 자본주의 사회의 상류층이 생산과 무관한 사치품 소비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고, 이러한 소비행태가 계층 전반으로 모방되며 비생산적인 소비 경쟁이 벌어진다고 비판했다그가 지적한 것은 단순히 명품 구매 자체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계급적 우월감을 드러내려는 태도였다.

 

베블런 효과라는 용어는 후대의 경제학자들이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수요 이론과 연결해 명명한 것이며, 정작 베블런 본인은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소비 현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인물이었다.

 

3. 짝퉁의 그림자: ‘보여주기 소비의 비틀린 반영

베블런 효과가 뿌리내린 사회에서 소비는 기능이 아니라 상징의 문제가 된다. 그 결과, 상품의 진위보다 외형과 인식이 중요해지는 구조가 나타난다. 이는 짝퉁(가짜 명품) 시장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명품 브랜드의 로고나 디자인을 흉내 낸 제품은 정품의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소비자들에게 비슷한 외형으로 사회적 지위를 흉내낼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진짜냐 가짜냐보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하냐가 중요한 사회에서는 짝퉁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

 

이는 베블런 효과가 단순히 상류층만의 소비형태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걸쳐 강하게 내면화된 문화코드라는 점을 보여준다. 짝퉁 소비는 그 구조에 기생하면서도 동시에 그 구조가 만들어낸 허구성과 불균형을 드러내는 그림자.

 

4. ()베블런 소비의 등장: 실용성과 자율성

그러나 이러한 과시적 소비와 외형 중심의 사회적 경쟁에 대한 반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가격 대비 성능이나 만족도를 중시하는 실용 중심의 소비 태도가 확산되고 있다이들은 브랜드나 가격이 곧 가치라는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기능, 쓰임, 품질에 집중한다.

 

적당한 가격에 충분한 만족을 중요시하고, 때로는 지속 가능성, 윤리적 생산, 개인의 취향과 자율성을 소비기준으로 삼기도 한다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베블런 효과로 대표되는 소비 질서 자체에 대한 비판과 전환의 징후로 볼 수 있다.

 

5. 마무리: 소비는 무엇을 반영하는가

베블런 효과는 단순히비싼 물건이 잘 팔린다는 말로 축약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이 현상은 소비가 사회적 지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작동하며, 상품 자체보다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의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경제적 신호 체계를 반영한다.

 

그와 동시에, 짝퉁 소비와 실용 소비의 흐름은 그 소비 질서에 대한 모방과 저항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