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분수’는 사실일까
고래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 높은 물기둥이 솟구치는 것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마치 분수처럼 물이 하늘로 튀어 오르는 듯한 장면은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 심지어 아이들 그림책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래의 생리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고래가 공중으로 내뿜는 것은 물이 아니라 폐에서 나온 따뜻한 숨결이다.
물고기가 아닌 포유류
고래는 물고기가 아닌 포유류다. 물속에서 살지만 허파로 숨을 쉬며, 인간처럼 산소가 필요한 존재다. 그래서 바다 밑에서 한참 머물다 수면 위로 올라오면, 먼저 숨을 내쉰 후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신다. 이때 고래는 머리 위에 있는 ‘블로홀(blowhole)’이라 불리는 콧구멍을 통해 숨을 내뿜는다.
이 블로홀은 진화과정을 거치며 얼굴 앞쪽에서 머리 꼭대기로 옮겨간 구조로, 고래가 수면 위로 최소한의 몸만 내밀고도 숨을 쉴 수 있게 해준다.
분수처럼 보이는 숨결의 원리
고래가 내뿜는 숨은 체온으로 인해 따뜻하며, 물속에서 머무는 동안 축적된 수분과 폐 속의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다. 이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차가운 외부 공기와 맞닿으면서 응결되어 하얀 수증기 구름처럼 보이는 것이다. 겨울철 사람의 입김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현상을 ‘블로우(Blow)’라고 부른다.
‘물기둥’은 착시일 뿐
물론 고래가 물속에서 올라오며 일부 바닷물을 함께 머금었을 수는 있다. 블로홀 주위에 고인 물이 공기와 함께 튀어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물 뿜기’와는 다르다. 블로우의 주성분은 물이 아니라 따뜻한 숨결, 정확히는 수증기다.
고래 종류에 따라 다른 블로우
흥미로운 점은 이 블로우의 모양과 높이를 통해 고래의 종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By AWeith-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대왕고래(Balaenoptera musculus)블로우는 두 개의 블로홀을 통해 똑바른 기둥형태로 최대 9미터에 이르는 숨을 뿜어낸다.
By Commander John Bortniak, NOAA, Public Domain, wikipedia commons.
향유고래(Physeter macrocephalus)는 하나의 블로홀만 가지고 있어 앞쪽으로 비스듬히 뿜어낸다.
By NOAA Photo Library,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반면 북방긴수염고래(Eubalaena japonica)는 두 개의 블로홀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V자 형의 이중 분사 형태를 보인다.
이처럼 블로우는 단순한 숨이 아니라, 고래의 생리 구조와 종의 특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생물학적 신호다.
분수가 아닌 생명 활동의 한 장면
고래가 뿜는 것은 분수가 아닌 숨이다. 그 숨결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하늘로 피어오를 뿐이다. 이처럼 고래의 블로우는 단순한 시각적 장관을 넘어, 생물학적 기능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정교한 자연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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