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용어들

‘판도라의 상자’라는 말의 기원과 오해

Egaldudu 2025. 7. 22. 11:19

놀라서 상자를 다시 닫으려 애쓰는 판도라

By Frederick Stuart Church,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신의 질투에서 시작된 서사

인간은 애초에 불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의 전달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위계가 흔들린 순간이었다.

 

제우스는 분노했다. 그 분노는 프로메테우스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에게 보복할 계획을 세웠다. 그가 선택한 수단은 바로 여성이었다. 판도라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제우스가 준비한 선물이었다.

 

모든 선물을 받은 자

판도라는모든 선물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존재다. 신들은 그녀를 인간에게 내려보내기 위해 세심하게 구성했다. 헤파이스토스가 몸을 빚었고, 아프로디테는 매혹을, 아테나는 솜씨를, 헤라는 호기심을, 헤르메스는 언변과 간계를 부여했다.

 

그녀는 선물로서 완벽했으나 그 자체로 재앙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축복처럼 보였지만 본질은 신의 징벌이었다. 인간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열지 말았어야 할 것

판도라의 상자라는 표현은 라틴어 번역자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판도라가 지닌 것은 상자(Box)가 아니라, 피토스(pithos)라 불리는 커다란 도기 항아리였다. 그 안에는 신들이 인간에게 주기로 계획한 모든 재앙기아, 질병, 상실, 고통, 죽음이 봉인되어 있었다.

 

판도라는 그 항아리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누구의 지시도 없었고, 악의도 없었다. 헤라 여신이 그녀에게 부여한 성정인 '호기심'이 그녀를 움직였다. 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모든 재앙이 날개를 달고 세상으로 흩어졌다. 충격에 빠진 판도라는 급히 뚜껑을 덮었고, 그 안에 남은 것은 단 하나, 희망(Hope)이었다. 인간의 삶은 그때부터 고통과 불안으로 가득 찼지만, 언제나 희망만은 남아 있었다.

 

신화로부터의 성찰

이 신화는 단순히호기심은 화를 부른다는 교훈을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 신화는 언제나 신과 인간 사이의 질서, 그 질서가 흔들릴 때 발생하는 균열과 대가를 이야기한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선사했고, 제우스는 여성을 통해 고통과 재앙을 세상에 풀어 놓았다. 그러나 그 안에 희망까지 담았던 것은 인간에 대한 그의 배려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통제의 장치였을까.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는 단순히 하나의 신화가 아니라, 문명과 선택,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결과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