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이야기

오렌지망과 베졸트 효과(Bezold effect)

Egaldudu 2025. 8. 17. 20:57

베졸트 효과 시연. 빨간색은 흰색 옆에서 더 밝고, 검정 옆에서 더 어둡게 보인다

By Lockal - Own work,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색은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과일을 집어 들 때 그것의 색을객관적으로 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눈과 뇌는 언제나 주변 맥락에 따라 색을 해석한다. 같은 색이라도 옆에 어떤 색이 놓여 있느냐에 따라 더 선명하거나, 더 흐릿하거나, 더 어둡게 보인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착시가 아니라 베졸트 효과(Bezold effect)라 불리는 잘 알려진 색채학적 원리다.

 

베졸트 효과란 무엇인가

19세기 독일의 기상학자 빌헬름 폰 베졸트(Wilhelm von Bezold)는 직물 무늬를 연구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동일한 색도 주변 색과의 관계 속에서 다르게 인식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빨간색이 흰색과 함께 있으면 밝고 선명해 보이지만, 검정색 옆에 놓이면 더 어둡고 탁해 보인다. 우리의 뇌는 색을 고립된 신호로 처리하지 않고, 맥락 속에서 상대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

 

실제 응용 분야

베졸트 효과는 단순한 학술적 흥밋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이 원리를 다양한 분야에서 접할 수 있다디자인과 예술에서는 포스터, 그림, 섬유 무늬 등에서 색 대비만으로도 작품의 분위기를 크게 바꿀 수 있다.

 

패션과 인테리어에서도 이 효과는 두드러진다. 옷의 색 조합이나 액세서리의 배치에 따라 피부 톤이 달라 보이고, 벽과 가구의 색 대비에 따라 공간이 더 넓거나 밝아 보일 수도 있다.

 

오렌지망, 양파망, 레몬망

주황색 망은 오렌지색을 더 짙게, 노란색 망은 레몬빛을 한층 더 선명하게 강조한다

Image by Freepik(), Freepik()

 

이 원리는 슈퍼마켓 과일 코너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오렌지가 주황색 망에 담기면 껍질 색이 실보다 더 진하고 잘 익어 보인다. 그래서오렌지망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주황색 망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처럼 굳어졌다. 레몬은 노란색 망에 담겼을 때 상큼한 인상이 강화되며, 양파는 붉은 망에 담기면 껍질이 더욱 진하고 건강해 보인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유통 사정이나 비용 문제 때문에 흰 망이나 초록 망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과일이나 채소의 색을 강조할 수 있는 망 색을 맞추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판매자들도 잘 알고 있다.

 

소비자의 눈을 움직이는 색

이처럼 색은 단순한 시각 정보가 아니라 우리의 인지와 선택을 움직이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오렌지망은 단순한 포장재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더 맛있고 신선해 보이도록 만드는 색채 심리학의 응용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마트에서 과일을 고를 때 과일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색의 연출까지 함께 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