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고집불통 짐꾼? 우리가 몰랐던 당나귀의 참 모습

Egaldudu 2025. 8. 20. 17:16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고집쟁이라는 편견

당나귀를 떠올리면 먼저 느리고 고집스런 짐꾼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영어에서 수컷 당나귀는 원래 잭에스(jackass)라고 불렸다. 그런데 당나귀가 고집 세고 다루기 힘들다는 이미지 때문에, 오늘날 ‘jackass’는 고집 세고 융통성 없는 사람을 비하하는 욕설로 더 널리 쓰인다.

 

그러나 당나귀의 행동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위험을 신중히 판단하고 움직이는 특성에서 비롯된다. 말은 놀라면 본능적으로 달아나지만, 당나귀는 자리에 멈춰 큰 울음으로 대응하며 상황을 마주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러한 성질 덕분에 당나귀를 소 떼 지키는경비 당나귀로 쓰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가축

당나귀는 약 7천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유래한 가축으로, 말보다 훨씬 앞서 사람들의 운송을 책임졌다. 보통 어깨마루(withers) 높이가 90~120cm 정도로, 말보다는 작지만 다부진 체형을 지녔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는 당나귀 무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그들이 단순한 짐꾼을 넘어 운송과 농업, 종교 의식까지 폭넓게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자기 체중의 20~30%를 묵묵히 짊어질 수 있는 힘은 고대 무역과 교역의 길을 열어준 중요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당나귀(donkey)라는 이름의 기원

흥미롭게도 ‘donkey’라는 단어는 비교적 늦게,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널리 쓰이게 되었다. 당나귀를 뜻하는 라틴어 asinus에서 온 ‘ass’가 욕설인 ‘arse’와 혼동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새롭게 자리 잡은 말이다.

 

어원적으로는 갈색·회색을 뜻하는 ‘dun’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되며, ‘monkey’와 같은 운율로 읽히도록 의도되었던 것 같다.

 

당나귀의 교배와 긴 귀

알프스 심플론 고개의 노새 몰이 짐꾼

By Hp.Baumeler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당나귀는 인간보다 16개 더 많은 62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며, 말이나 얼룩말과 교배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수컷 당나귀와 암컷 말 사이에서는 노새(mule)가 태어나고, 암컷 당나귀와 수컷 말 사이에서는 버새(hinny)가 태어난다. 그러나 이들 잡종은 사실상 모두 불임이며, 극히 예외적으로 번식력이 보고된 바 있다.

 

또한 말보다 훨씬 긴 당나귀의 귀는 소통수단이자 체온을 식히는 기능도 수행한다. 흥미롭게도 영어 표현 “donkey’s years(아주 오랜 세월)”는 당나귀의 긴 귀에 비유해 나온 말이라는 설도 있다.

 

종교와 문화 속의 당나귀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당나귀는 종교와 신화 속에서도 중요한 상징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의 행렬에 동반되는 동물로 등장하며, 신약성경에서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나귀를 타고 들어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당나귀 등의 어두운 십자가 모양 줄무늬는 기독교 전승에서 예수의 십자가와 연결되어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19세기 중반까지는 산타클로스가 종종 순록 대신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마무리하며

고집불통의 짐꾼이라는 이미지는 당나귀의 참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당나귀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동반자이자, 종교와 문화 속 상징이며, 오늘날에도 과학의 관심을 받는 동물이다. 편견에서 벗어나 바라보면, 당나귀는 고집쟁이가 아니라 현명한 동반자에 더 가까운 존재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