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동물도 술을 마실까? - 알코올과 진화 이야기

Egaldudu 2025. 9. 2. 17:06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술은 오랫동안 의례와 사교의 한가운데 있었고, 기쁨과 문제를 동시에 안겨준 존재였다. 하지만 알코올, 정확히 말해 에탄올은 인류가 발명한 물질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다양한 동물들이 이미 그것을 접하고 있었다.

 

자연 속 알코올

알코올은 효모가 과일이나 꿀, 수액 속의 당분을 발효시킬 때 만들어진다. 이는 최소 1억 년 전부터 있었던 현상으로,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는 과일이 쉽게 발효되어 에탄올이 생겨난다. 연구에 따르면 발효된 과일 속 알코올 농도는 보통 1~2% 수준이지만, 특정 야자나무(Astrocaryum standleyanum)의 열매에서는 최대 10.3%까지 기록된 경우도 있다.

 

, 발효된 과일과 함께 알코올은 오랫동안 동물들의 식단 속에 있었다. 실제로 캐나다 캘거리 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에서 조사된 37종 식물 중 29종에서 알코올이 검출되었고, 특히 포유류가 먹는 과일에서 농도가 더 높았다.

 

이러한 연구들은취한 원숭이 가설과도 맞닿아 있다. 생물학자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 20여 년 전, 영장류 조상이 잘 익고 발효된 과일에 끌리도록 진화했으며, 인간의 알코올 문화 역시 이 본능의 연장선이라고 제시했다.

 

술 마시는 동물들

여러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알코올을 섭취한다. 카리브해의 녹색원숭이는 발효된 사탕수수를 먹으면서 알코올에 입맛을 들였고, 지금은 관광객들의 칵테일까지 훔쳐 마신다. 침팬지는 잎으로 만든스펀지를 사용해 현지 주민들이 모아둔 야자수 발효 수액을 마시기도 한다.

 

조류에서도 사례가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유럽스타(Sturnus vulgaris)는 발효된 과일을 문제없이 먹으며, 사람보다 14배 정도 빨리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다. 반대로 북미의 삼나무비둘기(bombycilla cedrorum)는 산사나무 열매를 먹고 취해 제대로 날지 못하다 추락사한 기록도 있다. 알코올이 동물에게 꼭 득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다.

 

진화와 알코올

동물들이 알코올을 대사하는 능력을 지닌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대부분의 종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를 갖고 있다는 점은 발효가 오래전부터 생태계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어떤 동물은 놀라운 내성을 보이기도 한다.

깃털꼬리투피아 (Ptilocercus lowii, Pen-tailed treeshrew)

By Joseph Wolf (1820 – 1899),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아시아의 작은 포유류인 깃털꼬리투피아(Ptilocercus lowii, Pen-tailed treeshrew)는 발효된 야자 꿀을 대량으로 섭취하지만 취한 기색조차 없으며, 박쥐들 역시 에탄올이 섞인 먹이를 먹어도 비행 능력을 거의 잃지 않는다.

 

인간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

인간이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진화의 긴 시간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최근인 농경 이후의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세포는 알코올을 완전히 효율적으로 다루지 못한다. 알코올은 위와 장에서 흡수되어 혈액을 통해 간으로 이동하고, 간은 여러 효소로 이를 분해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아세트알데히드는 독성과 발암성을 가진 물질로, 숙취와 장기 손상의 주범이다.

 

알코올은 일시적인 흥분과 기분 전환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신체 곳곳에 부담을 준다. 뇌의 운동·균형·감정 회로를 교란하여 우리가 느끼는취함을 만들고, 과음하면 다음 날까지 피로, 두통, 메스꺼움 같은 숙취가 남는다. 안타깝게도 이를 빠르게 없애는 방법은 없고, 수분 보충 외에는 시간이 약일 뿐이다.

 

알코올의 양면성

알코올은 독일 수도 있지만, 동물들에게는 이점도 있다. 칼로리와 당분의 신호로 작용하고, 항균 효과도 발휘한다. 초파리는 오히려 알코올이 많은 환경에 알을 낳아 기생충으로부터 유충을 보호한다. 그러나 같은 알코올이 어떤 종에는 치명적인 사고를 불러오기도 한다.

 

알코올은 자연계에서 언제나 존재해왔고, 동물들은 그에 적응해왔다. 인간의 음주 문화 역시 이런 진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술에 끌리는 것은 단순한 문화적 취향이 아니라, 유전자 깊숙이 새겨진 자연의 유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