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사과 씨앗에는 정말 독성이 있을까?

Egaldudu 2025. 9. 26. 11:34

 

미미지 출처: 픽사베이

 

사과 씨앗, 그냥 삼켜도 괜찮을까?

사과를 먹다 보면 씨앗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버리지만, 혹시 씨앗 속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 실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다만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수준에서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씨앗 속에 숨은 화학물질, 아미그달린

사과 씨앗에는 아미그달린(amygdalin)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다. 이 성분은 시안배당체(cyanogenic glycoside)의 일종으로, 장내 세균이 만들어내는 효소에 의해 분해되면 시안화수소(HCN)를 방출한다. 시안화수소는 세포 호흡을 억제하는 독성 물질로, 과량 섭취할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아미그달린은 특정 식물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분자다

By Unknown author – LibreTexts,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씨앗이 잘게 부서져 효소와 직접 접촉해야만 분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씨앗을 그냥 삼켰을 때는 대부분 소화관을 그대로 통과해 배출된다.

 

실제로 얼마나 먹어야 위험할까?

학계에서는 체중 1kg당 약 50mg의 시안화수소를 치사량으로 추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체중 70kg 성인이 단숨에 사과 씨앗만 350g 이상을 먹어야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사과 한 알에는 씨앗이 몇 개 들어 있지 않으니, 일상적으로 사과를 먹는 상황에서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다만, 치사량에는 미치지 않더라도 씨앗을 일부러 씹어 다량 섭취하면 불쾌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동공 확장, 불안, 호흡 곤란, 경련 등이 보고된 바 있으며, 심한 경우 혼수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식물은 왜 이런 성분을 만들까?

아미그달린 같은 독성 성분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식물은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화학물질을 진화시켰다. 동물이 씨앗을 씹으면 불쾌하거나 위험한 경험을 하게 되므로, 식물 입장에서는 씨앗이 안전하게 보호된다.

 

흥미롭게도 씨앗을 통째로 삼킨 동물이 다른 장소에서 배출하면, 식물에게는 씨앗이 멀리 퍼지는 효과까지 생긴다, 독성은 식물의 생존 전략이자 씨앗 확산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미그달린은 사과 씨앗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장미과(Rosaceae)에 속하는 여러 과일 씨앗에도 존재한다.

자두 , 살구, 복숭아 씨에도 아미그달린이 포함되어 있다.

 

  • 쓴아몬드: 아미그달린 함량이 매우 높아, 식용으로 유통되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아몬드는단아몬드라는 별도 품종이다.
  • 복숭아, 살구, 자두, 체리: 이들의 씨앗이나 핵에도 아미그달린이 들어 있다. 특히 살구씨는 대량 섭취 시 중독 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다.

따라서 사과 씨앗의 독성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일부 씨앗류의 안전성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미그달린과 가짜 치료제의 역사

흥미로운 사실 하나. 20세기 중반에 아미그달린은라에트릴(laetrile)’ 또는 비타민 B17’이라는 이름으로 암 치료제로 홍보된 적이 있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심각한 중독 사례가 보고되면서 현재는 가짜 치료법(pseudoscience)으로 분류된다. 이 사건은 과학적 검증 없이 건강 정보를 받아들였을 때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과장된 공포를 넘어

정리하자면, 사과 씨앗에는 실제로 독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양으로는 해가 될 수 없다. 씨앗을 일부러 씹어 먹는 습관은 피하는 것이 좋지만, 사과를 즐기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사과는 여전히 가장 건강한 과일 중 하나다. 다만 이 작은 씨앗을 둘러싼 이야기는, 우리가 먹는 음식 속에도 자연의 방어 전략과 과학적 흥미가 숨어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