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레밍(Lemming)의 생존 전략과 오해의 기원

Egaldudu 2025. 3. 27. 00:50

 

 

 

 

1. 북극에 사는 작은 설치류

레밍(lemming)은 설치류(Rodentia) 비단털쥐과(Arvicolinae)에 속하는 작은 포유동물로 , 북극권 툰드라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주요 서식지는 노르웨이,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등이며, 대표적인 종으로는 노르웨이레밍(Lemmus lemmus)과 브라운레밍(Lemmus sibiricus) 등이 있다.

 

이들은 짧은 다리와 꼬리, 동그란 귀를 가진 둥근 체형으로, 땅속이나 눈 아래 터널을 파고 생활한다. 겨울잠을 자지 않고 혹한기에도 활발히 움직이며, 이끼나 풀, 지의류 등 식물을 주식으로 삼는다. 레밍은 북극여우, 눈올빼미, 족제비 등 포식자의 주요 먹이이기도 하다.

 

2. 번식력이 만든 개체 수 폭발

레밍은 번식 속도가 매우 빠른 동물이다. 암컷은 생후 약 3주 만에 성적으로 성숙하며, 해마다 여러 차례 번식할 수 있다. 임신 기간은 약 16일로 짧고, 한 번에 낳는 새끼 수는 평균 6~8마리에 이른다. 이러한 높은 번식력으로 인해 레밍 개체 수는 몇 년을 주기로 급격히 증가하는 주기성을 보인다.

 

개체 수가 최고조에 달할 때는 축구장 넓이( 1헥타르) 안에 수백 마리가 몰려 사는 경우도 있다이처럼 개체 밀도가 과도해지면 서식지 내 먹이 자원이 빠르게 고갈된다.

 

레밍은 자신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습성이 있어 개체 수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충돌이 빈번해진다. 이로 인해 일부 개체는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무리를 떠나는이주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3. 이동 중 발생하는 사고

이동을 시작한 레밍은 무리를 지어 움직이지는 않지만, 같은 시기에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면 자연히 많은 개체가 한 곳에 모이는 일이 발생한다. 호수나 강, 해안과 같은 자연 장벽에 도달하면 이동은 잠시 멈춘다. 이후 일부 개체가 수영으로 물을 건너기 시작하고, 이를 따라 다른 개체들도 물속에 들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레밍은 수영이 가능한 동물이지만, 물살이 세거나 수온이 낮은 날에는 익사 위험이 커진다. 이러한 사고가 다수 발생할 경우 해안에 시신이 밀려와 마치 ‘집단 자살’처럼 보이는 착시를 유발한다.

수정 Egaldudu / CC By-SA 4.0

 

4. 조작된 영상이 만든 오해

레밍의자살설이 전 세계에 퍼진 결정적인 계기는 1958년 디즈니가 제작한 자연 다큐멘터리 《하얀 황야, White Wilderness》였다. 이 작품에서 레밍이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이 방영되며 큰 충격을 주었지만, 나중에 해당 장면은 실제 레밍의 자연 행동이 아니라 촬영진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작진은 캐나다 앨버타(Alberta) 주의 촬영지에서 포획한 레밍을 절벽 끝으로 몰아넣어 촬영했고, 이는 사실상 조작된 장면이었다. 이로 인해 레밍은 자살하는 동물이라는 잘못된 이미지로 오랫동안 소비되어 왔다.

 

터리 《White Wilderness 가기

5. 생태계 순환을 이끄는 존재

실제로 레밍에게는 자살 본능이 없다. 이동 중 일어난 익사는 환경적 요인과 개체 수 압박의 결과일 뿐이다. 오히려 레밍은 북극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의 개체 수 증감은 포식자의 개체 수와 직접적으로 연동되며, 먹이망 전체의 균형을 좌우한다.

 

개체 수가 많아지면 포식자가 증가하고, 레밍이 줄어들면 포식자도 함께 감소하며 자연은 순환을 유지한다. 레밍은 죽음을 향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이동하는 생존의 조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