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가마우지, 보호종에서 유해조수로

Egaldudu 2025. 3. 23. 16:33

 

픽사베이 이미지

 

 

가마우지와 유럽의 생태 갈등

가끔 안양천을 걷다가 목격하는 이 새는 가마우지다. 검은 깃털에 구불구불한 목, 날개를 활짝 펼친 채 햇볕을 쬐는 모습이 인상적인 이 새는 도시 하천에서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크게 주목받지 않는 이 새가 유럽에선 오랫동안 환경·어업 갈등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조용한 하천의 사냥꾼, 가마우지

가마우지의 정확한 이름은 민물가마우지이며, 학명은 Phalacrocorax carbo.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종으로, 한국에서도 하천·호수·해안가 등지에서 사시사철 볼 수 있다. 뛰어난 잠수 능력을 이용해 물고기를 사냥하며, 사냥 후에는 물에 젖은 날개를 햇볕에 널듯이 펼쳐 말리는 습성이 있다.

 

한국에서는 특별한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으며, 생태계에서도 상징적이거나 사회적 의미가 크게 부각된 적은 없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 조용한 새가 생태 보전의 성과이자 동시에 새로운 갈등의 시작점이 되었다.

 

유럽에서 생긴 뜻밖의 갈등

유럽의 가마우지 개체 수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급감세를 보였다. 서식지 파괴와 사냥이 원인이었고, 이로 인해 유럽 각국은 민물가마우지를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강력한 보전정책을 시행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보호정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가마우지의 번식 개체 수는 급격히 증가했고, 이들은 강과 호수를 넘어 민물 양식장까지 진출해 물고기를 대량으로 사냥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의 어민들은 "어부보다 낚시를 잘하는 새"라고 불평했다. 양식장에서 길러놓은 물고기가 하루 만에 사라지는 사례도 생기며, 가마우지를 다시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보호냐 조절이냐, 생태계 딜레마

가마우지에 대한 논쟁은 단순한 조류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생태계 보호의 성공'이 언제 '피해 조절의 필요'로 바뀌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실제로 유럽의 몇몇 국가는 민물가마우지를 레드리스트(멸종위기 목록)에서 제외하고, 개체 수 조절을 이유로 일정 수 이하의 사냥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보호에서 바로 사살로"라는 아이러니를 낳으며, 환경단체와 어업계 사이의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 같은 종이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생태계의 희망으로, 어떤 사회에서는 생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상황. 가마우지는 바로 그 경계에 선 새다.

 

유럽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논쟁

2025년 현재도 유럽에서는 가마우지를 둘러싼 갈등이 진행형이다. 가마우지 개체 수 증가로 인한 어업 피해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독일, 프랑스, 덴마크 등 일부 국가에서는 제한적 사살을 허용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생태 보호와 경제적 손실 사이의 충돌은 해소되지 않은 채, 지역별로 상이한 대응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