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 식물들의 잎, 그 놀라운 전략
흐르는 물속은 식물에게 결코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다. 수온의 변화, 산소 부족, 그리고 특히 강한 물살은 생존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의 유일한 생존 전략은 ‘형태의 진화’로, 그 중 하나가 잎의 변화이다.
수생식물의 잎은 흔히 잘게 갈라져 있다. 이는 우연히 형성된 외양이 아니라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넓은 잎은 물살에 찢기기 쉽기 때문에 식물은 표면적을 줄이면서도 광합성 기능은 유지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이 전략은 강가나 도랑처럼 흐름이 빠른 곳에서 특히 중요하다.
실제로 물미나리(Ranunculus aquatilis, 수중 미나리아재비) 처럼 한 식물 안에서 서로 다른 두 형태의 잎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수면 위에는 넓은 잎이 펼쳐져 꽃을 지탱하고, 그 아래에는 실처럼 가느다란 잎이 물살을 따라서 흔들린다.
한 식물이 세 유형의 잎을 가진 경우
더 복잡한 잎 구조를 가진 식물도 있다. 애기부들(Sagittaria pygmaea)은 환경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의 잎을 형성하는 이형엽(異形葉, heterophylly) 식물이다.
수심, 햇빛, 수류 등에 따라 수중에서는 리본처럼 가느다란 잎이 생기고, 수면 가까이에서는 타원형의 떠 있는 잎, 그리고 수면 위로 돌출된 줄기에서는 화살촉 모양의 잎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 세 가지 잎이 모두 한 개체에서 동시에 관찰된 사례도 있으나 항상 세 유형이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서식 환경에 따라서 한두 가지 잎만 형성되기도 한다.
애기부들은 수심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크게 달라진다. 얕은 물에서는 20cm 남짓 작게 자라지만, 수심이 1m 이상 깊은 곳에서는 1m에 가까운 키로 꽃대를 올리기도 한다. 이런 유연한 생장 특성 덕분에 애기부들은 생태 복원이나 수질 정화 식재에 자주 활용된다.
꽃을 올리기 위한 계산된 구조
물속 식물의 공통된 과제 중 하나는 ‘꽃가루받이’다. 대부분의 꽃은 벌, 나비, 바람 같은 외부 매개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물속에 꽃을 피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수생식물은 반드시 꽃을 물 밖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잎’이 수면 위에서 꽃을 지탱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로는 ‘꽃자루’가 유연하면서도 충분히 길어야 한다. 흰수련(좌, Nymphaea alba)은 꽃이 수면 위에 바로 떠 있어 안정적이며, 노란어리연꽃(우, Nuphar lutea)은 수면 위로 꽃을 들어올려 조금 더 돌출된 구조를 가진다. 이때 꽃자루는 고무줄처럼 유연하게 늘어날 수 있어야 한다. 폭우 이후 수면이 갑자기 상승해도 꽃이 물속에 잠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부 대형 수련은 수심 3m가 넘는 깊이에서도 꽃을 수면 위로 올리는 것이 관찰된다. 이것은 단순히 줄기의 길이 때문이 아니라, 내부에 공기층을 포함한 조직 구조 덕분이다. 부력을 유지하면서도 구조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복합 설계가 숨어 있는 셈이다.
정체 수역과 유속의 차이, 식물 구조의 차이
물의 흐름은 식물의 몸 구조를 완전히 바꾼다. 고요한 연못이나 호수에서는 넓은 잎, 두터운 줄기, 큰 꽃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속이 빠른 개울이나 하천에서는 작은 잎, 얇은 줄기, 수면에 밀착된 구조가 생존에 유리하다. 이 때문에 일부 수생식물은 물 흐름의 차이에 따라 잎의 형태뿐 아니라 생활사까지도 달라질 수 있다.
한 식물이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알게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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