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정말 사자는 아프리카에만 살까?

Egaldudu 2025. 4. 14. 14:34

 

1. 인도에도 사자가 산다

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말은 지금의 이야기일 뿐 과거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현재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자가 생존하는 지역이 있다. 바로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이다.

기르 숲, 아시아사자 가족. By Mayankvagadiya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6727541

이 지역에 있는 기르 국립공원(Gir National Park)에는 2015년 기준 약 523마리의 사자가 서식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들은 아프리카 사자의 아종인 아시아사자(Panthera leo persica)로 분류된다. 몸집은 작고 갈기가 짧으며, 무리 규모도 작다.


한때는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까지 퍼져 있었지만, 지금은 인도의 기르 숲만이 이들의 유일한 보금자리다. 이 사자들은 인도 정부의 철저한 보호 하에 관리되고 있으며, 아프리카 밖에 남은 유일한 야생 사자 무리다.

 

2. 사자는 한때 세계적이었다

사자가 원래부터 아프리카에만 살았던 건 아니다. 시간을 수만 년 전으로 돌리면, 사자의 분포는 훨씬 넓었다. 플라이스토세 동안 반복된 빙기와 간빙기 시기, 사자는 유럽, 중앙아시아, 중동, 인도 아대륙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중 가장 극적인 사례는 유럽의 동굴사자(Cave Lion, Panthera leo spelaea)이다.

 

프랑스 쇼베(Chauvet) 동굴), By Claude Valette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7569433

동굴사자는 지금의 사자보다 훨씬 크고 갈기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독일, 체코 등지의 동굴에서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선사시대 벽화에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이 그림들은 인간이 직접 관찰한 사자를 정밀하게 묘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 멸종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지리적 풍경이었다. 사자는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었고, 인간은 그 모습을 동굴 벽화에 남겼다.

 

3. 신화는 현실을 기억한다

고대 기록 속의 사자들도 상상만은 아니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싸운네메아의 사자는 단지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실제 그리스 인근 지역에 살았던 사자의 잔영일 수 있다.

헤라클레스와 네메아의 사자, By Rubens - Own work Yelkrokoyade,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5913424

 

성경에도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자들이 자주 언급된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등의 유적에는 사자 사냥 장면이나 사자를 형상화한 부조가 왕권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사자는 단지 상징의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 두려움 속에 공존해야 했던 맹수였다. 오늘날 그 자취는 문명의 흔적 속에서만 확인된다.

 

4. 이제 단 두 곳

지금 이 지구에서 야생 사자를 볼 수 있는 곳은 단 두 곳뿐이다. 하나는 아프리카의 초원, 다른 하나는 인도의 기르 숲이다. 하지만 이 둘은 처지가 다르다. 아프리카 사자는 아직 생태적 공간이 넓지만 아시아사자는 고립된 채 연명 중이다.

 

기르 사자들은 유전적 다양성 부족, 질병, 서식지 위축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인도 정부는 보호에 힘쓰고 있지만 생존전략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거대한 동물이 전 세계를 누볐던 시간은 길었지만 살아남은 공간은 이제 너무 좁다.

 

사자는 본래 아프리카에만 살던 동물이 아니었다. 그들이 남긴 유골과 그림, 신화 속 이야기들은 모두 잊혀진 풍경의 일부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사자의 모습은 사실 수십만 년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