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지하 120m까지, 나무 뿌리의 수분 확보 전략

Egaldudu 2025. 4. 10. 19:57

 

1. 뿌리는 수분 확보의 핵심 기관이다

식물의 생존은 수분 확보에 달려 있다. 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나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나무가 물을 얻는 방식은 서식 환경과 뿌리의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건조한 지역에서는 지표면의 빗물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나무는 뿌리를 깊숙이 뻗어 지하수에 도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림포포 주의 에코 동굴(Echo Caves) 인근 지역에서는 한 무화과나무의 뿌리가 지하 120미터까지 뻗은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by JMK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3088790

이 나무는 무화과 나무의 일종인 Ficus natalensis(사진)로 추정되며, 이는 현재까지 관측된 가장 깊은 나무 뿌리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건조한 토양을 뚫고 수십 미터 아래의 수분층까지 물리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식물계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반대로, 하천이나 개울가에 자라는 나무는 상대적으로 얕은 뿌리로도 흐르는 수계에서 수분을 직접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맹그로브처럼 기수(염수와 담수가 섞인 물) 지역에 서식하는 식물은 더 복잡한 환경에 놓여 있다. 이들은 고염도 조건에서도 생존해야 하며, 특정 종은 잎이나 뿌리를 통해 염분을 배출하는 방식으로 적응해 왔다.

 

2. 뿌리는 물리적 음압을 이용해 수분을 끌어올린다

뿌리는 단순히 물을 흡수하는 관이 아니다. 실제로 나무는 물리적인 음압(negative pressure)을 활용해 지하의 수분을 수십 미터 위의 잎까지 끌어올린다. 이 과정에는 미세한 뿌리 끝에서 발생하는 모세관 현상과 증산 작용이 결합된다.

너도밤나무 숲, 픽사베이 이미지

너도밤나무(Fagus sylvatica)의 경우, 잎 면적 1제곱미터당 연간 약 700리터의 물을 뿌리로부터 끌어올린다. 하나의 나무가 약 1600제곱미터의 전체 잎 면적을 가질 경우, 연간 수십만 리터에 달하는 물이 이동하는 셈이다.

 

이때 뿌리 내부에서 형성되는 15~20bar의 음압은, 수심 200미터에서 작용하는 수압과 동일한 수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 면적뿐 아니라, 잎 표면의 구조도 증산량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잎에 보호막(큐티클층)이 얇을수록 수분 증발이 많아지고, 뿌리의 부담 역시 증가한다.

 

3. 나무는 뿌리를 통해 자원과 정보를 선택적으로 공유한다

나무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드레스덴 공대(TU Dresden)의 우타 베르거(Uta Berger) 교수나무의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연구해 왔다. 그녀는 나무가 무작위가 아니라 제한된 소그룹(보통 4~5그루)을 이루며 뿌리를 통해 자원과 정보를 교류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맹그로브 숲, 픽사베이 이미지

예를 들어, 맹그로브(Mangrove) 숲에서는 염분 농도가 높은 토양에 위치한 나무가염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인근의 건강한 나무가 뿌리 연결망을 통해 자신의 담수를 전달하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이는 단순한 생리작용이 아니라, 적응과 생존을 위한 생태적 연대의 형태다.

 

이 연결망은 자원뿐 아니라 정보의 통로이기도 하다. 한 나무가 병해충의 공격을 받으면, 주변 나무들에게 방어 신호를 보내고, 이들은 미리 피해 대비 물질을 생성한다. 연구에 따르면, 연결된 나무들은 단절된 나무보다 병충해에 강하고, 잎이 모두 떨어져도 생존 확률이 높다.

 

4. 뿌리 손실은 토양 생태계 전체를 붕괴시킨다

뿌리는 단순히 수분을 흡수하거나 나무를 지탱하는 구조가 아니다. 동시에 뿌리는 토양을 결속하는 힘이다. 자연 식생이 사라지고 뿌리가 손실되면, 지표면의 토양은 쉽게 침식되거나 바람과 비에 의해 유실된다. 이는 지속적 황폐화와 사막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240억 톤 이상의 토양이 손실되고 있으며, 지난 75년간 12억 헥타르 이상의 땅이 사막화되었다. 이는 미국과 인도 전체 면적을 합친 것과 유사한 규모다. 중요한 점은, 일정 수준 이상 황폐화된 토양은 더 이상 자연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뿌리의 손실은, 토양의죽음으로 이어진다.

 

5. 결론: 뿌리는 단순한 기관이 아닌 생존 전략의 핵심이다

씨앗에서 가장 먼저 자라는 구조는 뿌리다. 이 뿌리는 단지 수분을 흡수하는 관이 아니라 나무가 외부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한 복합적 전략 구조다뿌리는 스스로 토양 깊은 곳의 수분을 찾아내고, 주변 나무들과 자원과 정보를 선택적으로 공유하며, 토양을 결속해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유지한다.

 

지표 위의 줄기나 잎은 눈에 보이는 일부일 뿐이다. 실제 생존의 중심은 지하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뿌리는 그 모든 중심에서 조용히 기능하며 식물 생태계의 기초를 이룬다.


● 식물의 수액 상승 메커니즘에 관한 고전적인 연구로는 Tyree ZimmermannXylem Structure and the Ascent of Sap (2002)가 있다. 이 책에서는 나무 뿌리와 잎 사이의 수분 이동 압력이 최대 20bar에 달할 수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